▲강병덕 강릉영동대 부총장

한국헌정사 70년, 위기의 국면마다 희망의 불씨를 이어가며 민주주의를 지켜낼 수 있었던 것은 대한민국 국민들이 있었기에 가능했다. 이는 멀리 독립운동으로부터 4·19혁명, 광주민주화운동, 6·29선언과 최근 촛불혁명까지 민주주의는 이렇게 시민들이 지켜낸 것이다.

'지켜낸 민주주의'는 우리의 자랑이다. 그러나 동전의 양면처럼 시민의 아픔도 함께 담고 있다. 과연 무엇이 문제일까. 한국 정당은 서구의 정당들과는 달리 그 시작을 선거정당으로 출발한다. 조선시대, 일제강점기 그리고 해방을 거치면서 금시초면의 민주주의가 새로운 정치제도로 이식됐다. 제도의 실현을 위해서 정치인을 배출해야 했고, 이는 선거와 정당을 통해서만 가능하다. 이렇게 한국정당은 이념의 뿌리 없이, 시민사회의 튼튼한 기반 없이 정치인을 배출하기 위해 급조된 권력조직, 단순 선거정당으로 탄생하게 된 것이다.

이로 인해 정치는 극단적 대립, 진영 패권주의를 잉태했고 시민사회의 여론과 표를 양분했다. 정당은 권력을 중심으로 분열과 통합을 반복했고, 국회는 '제도화된 논의와 합의의 장'이 아닌 패권을 위한 이전투구의 장으로 전락하고 말았다. 지난 70년, 반복되는 위기의 순간마다 결국 시민들이 혁명의 한 복판으로 나설 수밖에 없었다. 시민의 아픔을 함께 담고 있는 역사, 이제 시민을 혁명의 한복판으로 내모는 정치는 멈춰야 한다. 그래야 시민이 행복하다. '헬(hell)조선(朝鮮)'이라 부르짖는 젊은 세대들의 외침이 어쩌면 생사의 변곡점에 서있는 한국정치의 민낯을 보여주는 것이 아닐까 싶다.

정치·선거·사법개혁도 필요하다. 그러나 지난 수많은 개혁의 역사가 반증하고 있듯이 본질적인 문제를 해결할 수 없다. 국민에게 더 가까이 다가가야 한다. 국민이 피부로 체감할 수 있는 정치, 그래서 생산된 정책이 국민에게 떨림과 감동을 줄 수 있어야 한다. 이것이 바로 가치의 정치다. '시민이', 시민 자치인 '시민에 의한', 시민만 바라보는 '시민을 위한 정치', 이러한 정치가 있는 곳에 시민이 행복하다. 어렵지 않다. 패권·권력 중심에서 사람·가치 중심으로 정치의 버전을 바꾸면 된다. '사람중심'이라는 정책기조를 세우고 각 분야별 정책을 흑백의 틀을 넘어 좌우의 논리를 수용하고 '시민이 행복할 수 있을까'라는 '시민행복'의 가치로 평가하고 생산하면 된다. 시민만 바라보고 시민의 편에서 정책을 생산하면 된다. 정치도 쉬워질 것이다. 패권·권력에 대한 집착만 내려놓으면 가능하다.

자치와 함께 협치가 견고히 서야 한다. 주민조례 제정, 주민참여예산, 마을공동체 만들기와 같은 사업들은 민·관 협치로도 가능했다. 하지만 교통·교육·복지 등 규모가 큰 사업들의 경우 해당 정부부처를 설득해 관철해야 한다. 사업과 충돌하는 시민들도 마찬가지다. 이제 전문성을 담보하고 객관성·대표성·책임성의 문제도 해결해 한 목소리를 내야 한다. 보다 견고한 민·관·정 협치가 절실한 이유다.

마루 아래 놓아서 딛고 오를 수 있게 한 돌이 디딤돌이다. 정치인은 시민에게 더 가까이 다가와 시민이 시민에 의한 시민의 정치로 시민의 행복을 이끌어낼 수 있도록 해야 한다. 시민의 생활공간으로 내려와 디딤돌이 되고, 시민은 디딤돌을 딛고 상승의 결과를 이끌어내야 한다. 이것이 시민들의 디딤돌, 곧 디딤돌의 정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