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기칼럼] 인문학 산행문화를 기다리며
[경기칼럼] 인문학 산행문화를 기다리며
  • 인천일보
  • 승인 2019.11.0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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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흥수 서울대 예술과학센터 선임연구원

 

지난 주말 오랜만에 등산 동호회가 주관하는 산행에 참가했다. 이전과는 사뭇 달라진 산행 문화를 실감했다. 이동하는 차에서의 음주와 가무가 사라졌다. 이동하는 동안에 몇 가지 간단한 등산 상식이라도 전달하면 좋겠다는 생각이 슬며시 들었다.

배낭을 꾸리고 매는 법, 등산화 끈을 묶는 법, 스틱을 사용하는 방법은 아직도 상당수의 동호인들이 잘 알지 못한다. 이를 바로 잡아주는 교육을 하지 않는 점도 아쉬웠지만, 방문지 산의 자연환경과 역사 그리고 인문학적인 해설과 안내가 이제는 필요한 때가 아닌가 싶다. 단순히 건강을 위한 산행보다 인문적인 배경이 있는 산에 대한 관심을 가진다면 더 알찬 산행이 될 것이기 때문이다.


이번 산행은 남한의 소금강이라 불리며 수려한 자연경관과 기암괴석이 장관을 이루는 한국의 대표적인 명산 청량산(경북 봉화군 명호면)이었다. 다른 산보다 역사 유적이 즐비하며, 이로 인해 선조들의 정신과 발자취를 곳곳에서 느낄 수 있었다. 고려 공민왕의 친필 현판을 비롯하여 퇴계 이황 선생과 제자 금난수의 시가 새겨진 현판, 조선시대 절개의 대명사인 사림(士林)들이 공부했던 후미진 처소들, 그리고 왜적에 맞서 싸운 의병 유적지 등이다. 특히 신라의 명필 김생의 글씨와 조선 중기의 학자 주세붕의 한시가 적힌 정상 표지석은 청량산의 백미이다. 다른 여느 산에 비해 역사와 환경 그리고 인문적인 향취가 남다른 곳이어서 특별함이 더했다.

"청량산 꼭대기에 올라 두 손으로 푸른 하늘을 떠받치니 햇빛은 머리 위에 비추고 별빛은 귓전에 흐르네 아래로 구름바다를 굽어보니 감회가 끝이 없구나 황학을 타고 신선 세계로 가고 싶네." 청량산 정상에 올라 마을을 휘감고 흐르는 낙동강을 바라보며 지었다는 이 시가 너무도 좋아 시를 읽고 또 읽는 바람에 하산을 한참이나 늦추고 말았다. 청량산은 독특한 기운이 서린 곳으로 남다른 품격이 느껴졌다. 하지만 대부분의 산행 동호인들이 청량산의 역사와 문화적인 향취를 잘 모른 채 산행을 마친다. 동호회 산행 안내서는 산행구간 지도와 시간 일정, 식사 장소, 산악 안내인과 인솔자의 연락처만 포함되어 있다. 방문지의 역사와 자연환경 등 인문학적인 내용은 전혀 다루지 않고 있는 실정이다.

우리나라 등산 동호회는 대략 6만여 개 정도로 추산된다. 이 중에서 산악 안전과 응급조치 등 전문교육을 이수하고 등산 안내인으로 활동하고 있는 사람들은 대략 수백 명 정도에 불과하다. 대부분의 등산 동호회에서 활동하고 있는 안내인들은 전문적인 소양을 갖추지 못한 상태다.

우리나라는 생활 주변 가까이에 산이 자리잡고 있어서 등산은 국민들에게 생활의 일부가 됐다. 하지만 산은 단순히 건강을 위한 휴식의 공간이며, 여러 사람들이 모여 친목을 도모하는 활동 장소 정도로만 여긴다. 정작 산이 가져다주는 흥미 있고 재미 있는 이야기는 제대로 즐기지 못하는 편이다. 그곳의 지형과 토양, 인접한 장소의 역사와 인문을 알게 되면 산을 중심으로 만들어지는 또 다른 에너지를 알게 되어 등산객들에게 건강한 삶의 가치를 선사할 것이다.

우선 등산 안내인을 대상으로 전문교육과 육성이 필요하다. 등산 안내인들이 전문화되면 동호인 활동도 더불어 세련된 운영을 하게 될 것이다. 또 동호회를 실제적으로 운영하는 운영자들을 위한 교육도 필요해 보인다. 동호회 운영을 전문적으로 수행할 매뉴얼도 만들어야 한다. 현재는 회비를 단순하게 징수하고 집행하는 수준에 머물고 있지만 참가 회비와 구별되게 연회비를 도입하고, 다소 의미 없이 지출되는 점을 개선하면 동호회 활동은 또 다른 체계를 갖추어 산행의 즐거움을 증진시키는 계기가 될 것이다.

우리나라는 국토 면적의 2/3가 산으로 형성된 대표적인 산악국가이다. 표고가 높지는 않지만 산세가 수려하고 풍광이 매우 아름답다. 그러나 자연환경을 이용한 산악 트레킹 프로그램은 다양하지 못하고, 특색 있는 관광상품은 거의 전무한 수준이다. 다양한 콘텐츠의 개발이 요구된다. 그 출발은 인문학적 산행이다.

정상을 향해 오르고 하산 후 산행 동료들과 긴 시간에 걸쳐 이루어지는 뒷풀이 음주문화는 반드시 개선돼야 할 사안이다. 정상에 오르며 시 한수를 읊는 산행 안내인을 만나기를 기대한다. 갈림길 이정표와 정상의 표지석의 글씨 하나하나가 예술품으로 다시 태어나길 바라면서 인문학 산행 시대를 기다려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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