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창식

 

세계시각장애인연합회(WBU)가 선포한 '흰 지팡이의 날'은 세계대전의 발발로부터 유래된다.

1943년 시각장애인이 급증하자, 안과 의사였던 리처드 후버(Richard Hoover) 박사가 시각장애인을 위한 흰 지팡이를 고안한 것이 계기가 됐다.

이후 흰 지팡이는 '시각장애인의 사회적 보호와 안전보장 그리고 자립의 상징'이 됐다.

우리나라에서도 10월15일을 흰 지팡이의 날로 지정하여 매년 행사를 개최한다.

시각장애인 수는 1, 2차 세계대전 때 급격히 증가했다.

우리나라 역시 일제강점기 때 강제노역에 의한 사고, 탄압, 복지의 배제 등으로 시각장애인이 급증했다.

일제강점기는 시각장애인에게 있어 역경의 시대였다.

다른 한편으로는 시각장애인에 대한 사회적 관심의 태동기였다. 이미 조선시대에는 서구보다 뛰어난 시각장애인 복지제도를 시행하고 있었다.

동서고금을 막론하고, 조선시대의 시각장애인 복지제도의 시행은 시기적으로 서구보다 훨씬 앞섰다.

조선시대는 위민사상과 민본을 근간으로 장애를 개인이 아닌 공동체의 책임 하에 두었다.

더 나아가 시각장애인도 능력에 따라 직업을 갖게 함으로써 자립과 구휼을 병행했다.

서구 근대의 구빈법(Poor Law)과 같이 실업과 빈곤은 개인의 게으름이 근본 원인이라는 비인권적인 차별과는 달리, 조선시대에는 모든 백성의 권리를 존중하고 소중히 여기는 전인권적 장애인 복지정책을 실시했다.

이렇듯 조선시대의 시각장애인 복지제도가 계승, 발전되지 못하고 단절된 근본 원인은 일제강점기의 복지제도 말살 정책에 기인한다.

조선시대에는 서구보다 앞서 시각장애인 공적 기관을 설립했고, 교육훈련과 활동보조인제도를 운영했다.

실례로 조선 초기의 태종과 세종 때 설립된 장애인단체 '명통시(明通寺)'는 시각장애인을 위해 특별히 설립한 기관이다.

또, 장애인의 자립을 위해 근대 미국에서 시작된 장애인 활동보조인 제도는 이미 조선시대에 '시정(侍丁)'이라는 이름으로 실시되고 있었다는 점도 주목할 만하다.

이런 측면에서 볼 때 조선시대의 장애인 복지제도는 신분사회로 비록 완전하지는 않았지만, 세계적인 우수성을 띠었던 것이다.

일제강점기 시각·청각언어 장애인 지원을 위해 조선총독부가 설립한 '제생원 맹아부'가 있었으나, 이 기관은 일제 침략의 정당성을 위한 대변 단체에 불과했다.

시련의 역사에서 시각장애인을 위해 평생을 바친 위대한 인물이 있다. 그가 바로 인천 강화도 출신 송암 박두성 선생이다.

시각장애인이 오늘날 글을 쉽게 읽고 쓰는 데 크게 기여한 인물이다.

박두성 선생은 한글 점자가 필요하다고 생각하여 6점식 한글 점자를 개발하였으며, 그 명칭을 훈맹정음(訓盲正音)으로 했다.

그 후 1926년 11월4일 훈맹정음 반포식을 거행하였고, 시각장애인의 문맹을 퇴치하는데 크게 기여했다.

이렇듯 우리는 옛것을 본받아 새로운 것을 창조하는 법고창신(法古創新)의 의미를 다시금 새겨 우리나라의 역사 속 시각장애인 복지제도를 내일을 향한 지렛대로 삼아야 한다.

매년 10월15일이 국제사회가 지정한 흰 지팡이의 날이라는 것을 잘 알지만, 매년 11월4일이 세계에서 가장 우수한 '한글 점자(훈맹정음)'의 날이라는 사실도 잊지 말았으면 한다.

/한국장애인고용공단 인천지사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