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영미 인천녹색연합초록교사

"아들, 며느리하고 잘 지내기가 쉽지 않은데 어쩌면 그렇게 지혜로우세요. 이틀이 멀다하고 며느리하고 통화하신다면서요. 손주들도 할머니집에 오는 걸 좋아하고. 어쨌든 부럽습니다." 문화강좌에서 만난 지인에게 쏟아지는 칭찬의 말들이다. 아들, 며느리와 전화통화는 물론이고 문자를 허물없이 주고받고 일상사를 공유하는, 좋은 관계를 유지하는 비결이 궁금했다.

결혼 초 시어머니가 집에 오셨단다. 큰 마음먹고 갈치를 구워 드렸는데 젓가락으로 접시를 툭 앞으로 밀면서 "난 비린 거 안 먹는다" 하고 냉정히 말씀하셨다 한다. 접시와 젓가락이 부딪히면서 난 금속성 소리가 아직도 가슴에 맺혀 있노라고 했다. 게다가 "아이는 언제 가질 것이며 첫 아이는 아들이어야 한다"며 시시콜콜 간섭했던 모양이다. 또 며느리만 보면 다리가 아프다며 앓는 소리를 어찌나 하시는지 자신은 어지간히 아프지 않으면 자식들을 찾지 않을 작정이란다. 그래서 현재 자신은 며느리가 해 주는 음식은 맛의 여부를 떠나 군말 없이 먹고, 독립한 아들 부부의 가정사에는 일체 간섭하지 않는다는 것이다.
우리가 경험하는 대부분은 사람과의 일이다. '세 사람이 함께 가면 그 중에 반드시 나의 스승이 있다(三人行必有我師)'고 했다. 뛰어나면 뛰어난 대로 부족하면 부족한 대로 나와 같은 사람은 단 한 사람도 없기에 사람 모두는 나의 스승이 될 수 있다. 그러나 나보다 뛰어난 사람과 부족한 사람 중 어느 쪽이 나를 더 성장시킬까?

너무 잘난 사람과의 만남은 처음부터 기가 죽는다. 옛날 위인전을 보면 그들은 처음부터 범인들과 태생부터가 다른 존재들이다. 애초부터 경쟁 상대가 되질 않는다. 나를 키워줄 사람이 아니란 생각에 주눅부터 든다. 현실감이 떨어지다 보니 요즘은 위인들의 지질한 면을 부각시킨다. 하지만 위로는 커녕 거리감 역시 떨칠 수 없다. 나와는 차원이 다른 면모가 그들을 위인으로 만들었음을 인정할 수밖에 없는 것이다.

주변에 많은, 나보다 부족한 사람은 어떤가. 부족하다는 것의 모호함을 인정하더라도 나에게 유난히 상처를 주거나 힘들게 하는 존재 한둘은 있을 것이다. 그들을 회피하거나 비난해 버릴 수도 있다. 하지만 외면하지 않고 그들의 단점을 정면으로 응시할 때 그들 모두는 나의 스승이다. 그들에게 받은 상처를 스스로 치유해 한 발 나아감이 바로 반면교사(反面敎唆)다. 상처를 긍정으로 바꾸는 힘. 며느리의 호의를 야멸차게 밀어내는 시어머니의 냉정함을 통해 사람의 호의를 따뜻하게 받아들이는 자세를 익히는 그것이 바로 반면교사의 힘이다. 반면교사의 힘으로 우리는 좀 더 완전한 나와 조금씩 좋아지는 세상으로 나아갈 것이라 믿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