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기환 논설위원

과거 아날로그 시절, 수습기자들은 저마다의 휴대용 스크랩북이 있었다. 예고도 없이 맞닥뜨리게 될 각종 사건·사고 기사의 기본 패턴을 곁에 두기 위한 것이다. 선배 기사들 중 텍스트가 될 만한 것들을 종류별로 스크랩했다. 살인, 강도, 강간 등 강력사건 외 화재나 연탄가스 중독 등도 있었다. 시장에서 큰 불이 잦던 때라 '시장 화재'라는 목록도 따로 있었다. 스마트폰 하나로 해결할 일을, 그때는 손때 묻은 스크랩북을 대물림하기도 했다. ▶살림살이가 나아지면서 웬만한 화재사고는 신문 지면에서 밀려났다. 대신 방송뉴스에서는 화면을 살려주는 소재가 됐다. 2003년 2월18일 아침의 '대구 지하철 화재 참사'도 그랬다. 그 시각, 마침 멀지 않은 곳에서 치솟는 연기를 보고 택시를 탔지만 '헛고생 아닌가'하는 생각도 들었다. 덕분에 일찍 현장에 도착했더니 그야말로 장난이 아니었다. 네거리 8곳의 지하철 출구들은 쉬지 않고 시커먼 연기를 토해내는 굴뚝이 돼 있었다. 수습기자 스크랩북의 화재 기사가 아무 소용없는 초유의 대형화재였다. 지하 깊은 곳에서 미쳐 날뛰는 화마(火魔) 앞에서 소방당국도 망연자실했다. ▶이윽고 그 지하철을 탔던 이들의 부모, 형제, 자녀들이 역주변으로 달려나왔다. 땅을 치며 딸의 이름을 부르던 한 어머니는 계속 휴대폰을 눌러댔다. 불이 난 지하철에 갇힌 딸의 마지막 전화를 받고서야 뛰쳐나온 참이었다. "엄마 숨을 못 쉬겠어." "숨이 차서 더이상 통화를 못하겠어. 엄마 그만 전화해." "엄마 사랑해…." 초로의 한 아버지는 "불효 자식을 용서해 주세요"라는 막내 아들의 마지막 인사를 받아야 했다. 신혼의 한 새댁은 회사에 있는 남편에게 "오빠 사랑해"라는 마지막 통화를 남겼다. 이날의 모든 마지막 통화는 "사랑해"로 끝을 맺었다. 그 2년 전 미국 9·11 테러 당시의 마지막 통화들을 떠올리게 했다. 디지털 시대가 빚어낸 가슴저린 풍경이었다. ▶인천 인현동 화재 참사가 일어난 지 20년이라고 한다. 참사 20주기 추모위원회가 꾸려져 아픈 기억을 공유하고 추모하는 사업에 나서 있다. 인현동 참사 때 호프집의 창문들은 석고보드로 막히고 출입구도 돈을 못받을까 걸어잠겨졌다. 대구 지하철 참사 때도 지상으로의 대피 통로들은 지하상가의 방화셔터에 가로막혔다. 지인들 중에도 인현동에서 자식을 잃은 이들이 있다. 그 젊은 희생자들은 마지막 통화도 남기지 못했다. 어느 편이 더 가슴 아플지는 쉽게 판단이 서지 않는다. 다시금 젊은 영혼들의 명복을 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