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광덕 경기북부취재본부 부장

 

아프리카돼지열병(ASF)이 발생한 지도 어느덧 40여 일이 지났다. 지난달 17일 파주시에서 최초 ASF 확진 이후 지금까지 바이러스에 검출된 사육 돼지는 14마리다. 전국이 축산 대혼란 속에 비상사태다. 현재로선 해결될 기미도 보이지 않고 있다.

더 큰 문제는 아직까지 발생 원인이 밝혀지지 않은 데다 백신 또한 개발되지 못했다는 점이다. 사람에게 전염되지 않지만, 현재까지 마땅한 예방 백신이나 치료약도 없다. 결국 정부와 지자체는 ASF 확진 이후 야외 행사 등을 전면 취소하면서까지 방역에 전념했다. 더이상의 ASF 확진을 막겠다는 이유다. 그러나 정부가 단일대응 체제를 갖추지 못하면서 사태를 키웠고, 장기화 국면으로 이어졌다. 한마디로 초기 대응에 실패했다는 여론이 지배적이다.

최근 국정감사에서 이만희 자유한국당(경북 영천·청도) 의원은 "ASF와 관련해 농림부, 환경부, 국방부를 나눠 생각할 게 아니라 단일체제를 갖추고 대응해야 옳다. 겨울철 바이러스 생존이 길어지는 것에 대비해야 한다"고 지적했다. 이에 김현수 농림축산식품부 장관은 "야생 멧돼지 개체수 확산을 막는 게 급선무다. 오염 가능성이 있는 돼지의 경우 빠른 시일 내 수매나 살처분하는 것이 불가피하다. 소독과 방역에 집중하겠다"라는 원론적인 답변을 내놨다. 소독과 방역 외에는 특별한 대책이 없다는 얘기다.

과거 우리는 매년 구제역 발병이 사회경제에 끼친 엄청난 영향을 반복적으로 경험해 왔다. 구제역에 걸린 수많은 돼지와 소를 살처분해야 했다. 이로 인해 농가와 소비자는 경제적으로 큰 손해를 봤고, 사회적 손실 또한 매우 컸다. 그런데도 정부는 돼지열병의 방역 골든타임을 잃었다. 정부가 ASF 유입경로를 파악하지 못하면서 장기전에 돌입한 셈이다. 실제 정부와 지자체는 사육 돼지에 대해 방역과 소독을 집중했다. 야생 멧돼지는 아예 생각하지도 않았다.

올 1월부터 농민단체와 세계 동물보호 기구에서 ASF의 풍토병화의 가능성을 제기했다. 하지만 정부는 멧돼지의 남하 가능성을 무시했다. 그러나 결국 ASF가 유입됐다. 첫 사례는 10월2일 경기 연천 비무장지대(DMZ)에서 발견됐다. 이후 연천과 파주, 강원 철원의 DMZ 이남 민간인 출입통제선(민통선) 지역을 중심으로 현재까지 총 15마리의 야생 멧돼지가 돼지열병 바이러스에 감염된 사실이 확인됐다.

상황이 이러자 지자체와 농민단체가 정부에 야생 멧돼지 총기 포획을 꾸준히 건의했다. 정부는 뒤늦게 야생 멧돼지 소탕 작전을 벌이겠다며 펜스 설치와 함께 총기 포획을 한시적으로 허용했다.

멧돼지의 번식기인 11월은 이동이 활발하다. 현재 국내에 서식하는 야생 멧돼지는 약 35만 마리로 추산된다. 가족 단위로 서식하는 멧돼지의 특성상 효율적으로 멧돼지를 잡을 수 있을지 의문이다. 아쉬운 것은 정부가 ASF 발생 초기에 전파 주요 원인으로 꼽히던 야생 멧돼지에 대해 일제 수색과 함께 민통선 안팎으로 역학조사를 했다면 지금과 같은 상황에 혼란스럽지는 않았을 것이다. ASF 방역 상황은 장기전에 들어갔다. 언제 끝날지 모르지만 종식이 된다 해도 걱정이다. 후폭풍이 예상된다. 정부와 지자체는 실수를 반복해선 안 된다. 기댈 곳 없이 망연자실한 농민단체와 시민들을 위해 현실적이고 실현 가능한 종합대책을 세워야 할 시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