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관계' 맺고 사는 법, 누구나 들었으면
▲ 인문학 강의를 통해 노숙인 등 사회적 약자들의 자활을 돕는 최준영(54)작가가 수원화성 성곽 안에 자리 잡은 작은도서관 '책고집'에서 밝은 표정으로 인터뷰에 응하고 있다. /김철빈 기자 narodo@incheonilbo.com


운영하던 독서동아리 이름 따서
수원화성 성곽길 주변에 문 열어
내로라하는 명사 초청해 매주 강의

프리랜서로 대학교·대기업은 물론
장애인 미혼모 등 약자 가르치며 
국내 최초 노숙인 주간지 창간 준비 주도
판매권한 주고 경제활동도 이끌어




왜 노숙인들에게 인문학 강의를 했을까? 왜 그가 운영하는 작은도서관에 명사들이 몰려들까? 인문학공동체를 이끌고 있는 작은도서관, 책고집의 대표 최준영(54) 작가를 향한 세간의 질문들이다. 인문학이 특권층의 전유물이 아니라 누구나 들을 수 있는 것이고 사람은 누구나 사회 관계 속에서 성장해 간다는 믿음으로 책고집의 문을 연 최 작가는 단시간에 책고집을 인문학 강의의 명소로 만들었다. 인문학을 향한 묵묵한 행보를 이어가고 있는 최 작가를 16일 수원의 책고집에서 만났다.

#인문학 강의의 핫 플레이스

지난해 12월, 수원 화성 성곽길 주변에 작은도서관 책고집이 둥지를 틀었다. 책고집이 생겨날 당시만 해도 '과연 개인사업자가 운영하는 작은도서관이 살아남을 수 있을까'라는 도서출판계의 의구심이 있었지만 현재 책고집은 수원의 인문공동체로서 위상을 우뚝 세웠다.

"개관 1년도 채 안돼 31번째 책고집 온라인 커뮤니티가 평택에 문을 열었습니다. 평택 용이초등학교에서 강의를 마치고 돌아온 날 바로 만들어진 커뮤니티죠. 책고집의 커뮤니티는 한 번의 강의가 아쉬운 수강생들의 자발적인 열의로 만들어집니다. 31개의 책고집이 세워진 것은 3000여명 회원들의 힘이었죠."

작은도서관 책고집에서는 이름만 대면 알만한 국내 명사들의 인문학 강좌가 시시때때로 열린다. 문학평론가 신형철, 정신과 전문의 정혜신, 사회학자 엄기호, 기생충 박사 서민, 작가 은유. 이들 모두가 책고집을 거쳤다. 강의계의 셀럽으로 통하는 이들이 고액 강사료를 마다하고 책고집을 찾는 것은 최 작가의 인적 네트워크 바탕 위에 인문학에 대한 열정이 더해졌기 때문이다. 책고집에 강의가 열리는 날이면 일대는 인산인해를 이룬다. 전국 각지에서 성별도, 나이도, 직업도 모두 제각각인 이들이 오직 인문학 강의를 듣기 위해 몰려든다.

"한 번 하기도 힘든 강의를 한 주도 거르지 않고 열었습니다. 개관 1년도 채 안 됐지만 50여 차례의 인문학 강의가 이곳 책고집에서 열렸죠. 국내 내로라하는 강사들이 책고집을 찾았고 강의가 있는 날이면 전국에서 몰려든 수강생들로 발 디딜 틈이 없습니다. 이들 모두 저와 돈독한 관계를 유지해온 분들이죠. 동료애를 밑천 삼아 기꺼이 강연자로 나서 준 고마운 분들이라고 표현하고 싶네요."

#인문학의 '둥지' 지켜내기

책고집의 시작을 알린 건 지난해 겨울이었다. 앞서 소개한 셀럽들 못지않게 꽤 유명했던 최 작가는 연중 빡빡한 강의 스케줄로 쉴 틈 없이 전국을 누볐다. 강의가 끝날 때쯤이면 못내 아쉬워하는 수강생들을 뒤로 하고 강의실 문턱을 나서야 했던 그는 어느 날 머릿 속을 스치는 아이디어 하나가 떠올랐다. 가진 거라곤 책밖에 없지만, 이 5000여권에 달하는 책을 활용해 도서관을 만들어 누구나 언제든지 들을 수 있는 강의를 열면 어떨까.

"강의라는 것이 누군가의 지적 허영심을 채워주기 위한 특권층의 전유물 같이 느껴졌어요. 사실 강의는 노숙인이 됐든 미혼모가 됐든 제소자가 됐든 누구나 들을 수 있는 거잖아요. 누구나 언제든지 들을 수 있는 강의를 하고 싶었습니다. 책고집이 현대인들이 소통하고 시대의 담론을 고민하는 그런 장으로써 역할을 하길 기대합니다."

최 작가가 수원에 책고집의 둥지를 튼 것은 수원이 그의 거주지이기도 했지만 독서동아리 형태로 운영되던 온라인 책고집의 회원수를 가장 많이 보유한 지역이 수원이었기 때문이다. 이름 역시 평소 운영하던 독서동아리의 이름 '책고집'을 그대로 따왔다. 사람의 온기와 인문학에 대한 열망들이 이어질 수 있는 보금자리가 됐으면 하는 의미에서 최 작가는 책고집 공간을 '둥지'로 칭했다.

유료 수강 형태로 진행되는 책고집의 수준높은 강의는 현재까지 시청, 구청, 공공도서관 등 수많은 무료 강좌들 속에서도 살아남아 빛을 발하고 있다. 책고집은 강연자들에게 매우 의미있는 공간이고, 책고집 회원들 역시 언제까지나 '둥지'가 지켜지길 원하고 있다.

#사회배려계층을 위한 강의

최준영이라는 그의 이름 앞엔 '거리의 인문학자', '거지교수'라는 수식어가 따라 붙는다. 익히 알려진 대로 그는 2005년부터 성프란시스대학에서 노숙인, 장애인, 미혼모 등 사회적 배려층을 대상으로 인문학 강의를 한 바 있다.

"노숙인들에게 인문학 강의를 하자 폭발적인 관심이 쏟아졌지만 그만큼 많은 질타도 받았습니다. 이들이 자립할 수 있도록 기술이나 먹고 살아갈 방법을 교육해야지 왜 인문학 강의를 하냐는 것이죠. 이들에게 필요한 건 무엇보다 '사람'입니다. 사람과 관계 맺는 법이 기술을 가르치는 일보다 중요했습니다."

노숙인 제자들이 사회의 한 구성원으로 자리해 갈 때쯤 최 작가는 또 한번 세상을 놀라게 했다. 그는 2008년 국내 최초로 스트리트 페이퍼  '빅이슈(Big Issue)' 한국판 창간을 위한 온라인 커뮤니티 카페를 창설했다. 빅이슈는 노숙인들에게 판매 권한을 주고 판매 기금을 노숙인들에게 주는 수익 구조로 1991년 영국 런던에서 시작됐다.

"대개 노숙인들이 사회에 진출했을 때 취업하는 과정에 애로를 겪습니다. 이들의 취업을 돕기 위한 방법이 필요했죠. 이때 빅이슈가 해답이 될 수 있겠다는 생각에 당장 런던으로 가는 비행기에 몸을 실었죠."

최 작가는 노숙인 대상 강의에 이어 경희대 실천 인문학센터에서 교도소 수감자들을 위한 인문학 강의도 했다. 2010년부터는 군포시 홍보기획팀에 몸담으며 군포시를 전국 최고의 책의 도시로 만든 '책읽는 군포'를 기획하기도 했다. 현재는 프리랜서 인문학 강사로 활약하며 사회배려계층을 대상으로 강의하고 있다.

"사회배려계층은 정치적, 경제적 관점만으로만 바라봐서는 안됩니다. 관계학적인 관점으로 봐야 하지요. 그들이 사회 관계 속에서 어울리며 살아가는 방법을 누군가는 알려줘야 할 필요가 있습니다."

#최준영 작가는?
1965년 서울에서 태어난 최준영 작가는 2000년 문화일보 신춘문예(시나리오 부문)에 당선되면서 작가의 길을 걷고 있다. 2002년 경기문화재단 편집주간, 2005년부터 국내 최초 노숙인 인문학 강좌인 성프란시스대학에 참여하면서 '거리의 인문학자'라는 별칭을 얻었다. 이후 경희대 실천인문학센터와 군포시청 홍보기획팀장을 역임했으며 현재는 프리랜서 인문학 강사로 아주대 공공정책대학원과 경기도 인재개발원, 삼성전자에 출강 중이다. 특히 2018년 12월에 수원 장안문 근처에 작은도서관 '책고집'을 만든 뒤 연중 인문강좌를 진행 중이다. 지은책으로 '결핍을 즐겨라', '최준영의 책고집', '동사의 삶', '책이 저를 살렸습니다' 등이 있다.

/박혜림 기자 hama@incheonilbo.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