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힐링카페] 부모 통제와 자녀의 분노
[힐링카페] 부모 통제와 자녀의 분노
  • 인천일보
  • 승인 2019.10.25
  • 댓글 0
이 기사를 공유합니다

김혜숙 백석대 교수·마인드웰심리상담센터 상담사

대학생 은수는 초기 조현병 증세로 상담소를 찾아왔다. 다른 학생들이 나를 보면 내 이야기를 하고, 나에 대해서 욕하고, 혼자 있을 때는 누가 나를 감시하고, 환청도 들린다고 말한다. 중학교 때 친한 친구들 사이에서 은근히 은따를 당한 경험이 있어 그때 그 친구들을 만나면 꼭 복수해주고 싶다고 한다. 슈퍼마켓을 운영하는 부모 때문에 어린 시절을 혼자서 지내야했다. 물건을 배달하는 청년에게 옥상으로 끌려가 성추행을 당한 기억도 있다고 한다.

주말에 살랑거리는 원피스를 입고 남자친구를 만나러 갈 때마다 엄마가 다가와서 묻는다. "너 오늘 데이트 가니, 어디 갈거니, 무엇을 하니?" 등 딸의 사생활을 모두 캐묻는다. 이런 엄마가 짜증나지만 원래 엄마란 그런가 보다 하고 참고 지냈다. 엄마와 관계도 별로 좋지 않지만, 엄마는 자신의 한이 맺힌 시댁하고의 관계나 부부관계도 은수에게 다 털어놓는다. "그러니 너라도 엄마 속상하게 하지 마라, 너라도 시집을 잘 가야한다. 너라도 공부 잘해서 좋은 직장에 가 떳떳하게 살아라" 등 늘 듣던 말들을 듣게 된다. 은수는 더 이상 참을 수 없어서 엄마에게 소리를 지르고 급기야 폭발했다.


은수는 남자친구와 1박2일 주말 여행을 계획하고 '남친'이랑 메일로 약속 장소와 여행지를 의논하며 주말여행 기대에 부풀어 있었다. 이때 엄마는 딸 모르게 메일을 보고는 '갈 수 없다'고 대신 답신을 보냈다. 남친의 전화를 받은 은수는 엄마가 한 것을 알고는 분개하며 엄마와는 말도 하기 싫어하고 단절을 원한다. 엄마는 "다 너를 위해서야"라고 하지만 너무 속상하다. 그 이후 은수는 남자친구와도 헤어지고 다 모든 게 엄마 때문이라는 생각에 엄마만 보면 화가 나고, 속상하고, 엄마를 죽이고 싶을 정도라고 한다.

엄마는 은수가 자신으로부터 멀어지는 느낌이 들자 딸에 대한 걱정이 도를 넘어서면서 내면의 불안이 걷잡을 수 없이 커졌다. 딸이 어디서 누구와 만나는지, 무엇을 하는지 궁금해하는 것은 물론 스마트폰을 훔쳐보거나 심지어 쓰레기통까지 뒤지기도 한다. 은수는 이런 엄마가 안쓰럽고 때로는 밉고 화가 나지만 엄마라서 거부하기도 어렵다. '내 엄마 맞아'라고 소리지르고 싶다. 사생활을 침해당하고 사사건건 간섭받는 딸은 자신을 믿어주지 않는 엄마에게 상처받고, 어떻게 하든지 엄마로부터 멀어지고자 나름대로 노력하지만 엄마는 나의 모든 것을 알고 있는 것에 정나미가 떨어졌다. 엄마로부터 멀어지려고 하면 할수록 엄마는 나를 더 움켜쥐고 놔두지를 않는 올무같다고 표현한다.

부모의 감시와 통제는 자녀의 자발성을 무기력으로 바꾼다. 아이가 자라면서 적절한 통제도 한계 설정이나 규칙을 위해서는 필요하지만 다 자란 성인에게 엄마의 강한 통제는 결국 엄마의 불안요인 때문이다. 엄마가 결혼한 남편에게 처녀 때 성폭력을 당해 결혼을 할 수밖에 없었다. 이런 상처는 자녀에게 고스란히 전달되어 금지하는 것이 많다.

부모의 억압과 순종으로만 키워진 자녀는 대인관계에서도 자신의 주장을 못하고 자신의 진정한 욕구가 무엇인지 모르고 성장하게 된다. 억압받으며 자란 딸은 자유롭게 세상을 탐색하고 자신이 좋아하는 일이 무엇인지 발견하도록 하기보다는 모두 엄마의 관점으로 제한당하고 위축될 수밖에 없다. 엄마의 불안과 부정적인 세계관 때문에 딸은 본질적인 가치를 보지 못하고 불신을 더 먹고 자란다.

엄마로부터 인간적인 대우와 존중받지 못한 것, 학대받은 감정, 방치한 감정들을 부모에게 똑바로 직면시키는 것이 필요하다. 직면하는 과정을 통하여 더 이상 부모라도 자신을 함부로 대하도록 허용하지 않겠다는 스스로의 힘과 자존감을 회복하게 해야 한다. 부모의 어떤 행동들이 어떻게 느껴졌는지, 내 삶에 어떤 영향을 미쳤는지, 그 당시 어떤 것들이 상처가 되었고 그래서 어떻게 행동하고 사고하게 되었는지 허심탄회하게 나눔으로써 분노를 긍정적인 방법으로 발산하도록 해야 한다.


▲ 인천일보, INCHEONILBO


댓글삭제
삭제한 댓글은 다시 복구할 수 없습니다.
그래도 삭제하시겠습니까?
댓글 0
0 / 400
댓글쓰기
계정을 선택하시면 로그인·계정인증을 통해
댓글을 남기실 수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