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펙트럼 인] 반일·신친일종족주의를 넘어
[스펙트럼 인] 반일·신친일종족주의를 넘어
  • 인천일보
  • 승인 2019.10.1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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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웅희 인하대 국제통상학과 교수

 

2015년 일본 외무성은 전후 일본이 평화국가로 변모해 아시아의 평화와 번영에 공헌하고 아시아 지역의 국가 건설을 적극적으로 지원했다는 2분 정도의 홍보영상을 CNN과 유튜브 등을 통해 송출했다. 1951년 샌프란시스코강화조약으로 국제사회에 복귀한 일본은 1954년부터 아시아 각국에 대한 경제원조를 개시했다고 선전했다. 중국 및 동남아지역의 정부개발원조(ODA) 사업과 더불어 서울지하철 1호선, 포항종합제철소, 소양강댐 건설 등을 경제성장의 토대를 닦은 대표적인 성공사례로 거론했다.

이에 대해 국내 언론은 보수, 진보를 막론하고 즉각 반발했다. C일보는 일본의 침략에 대한 보상으로서 지불한 금액을 마치 선의의 정부개발원조인 것처럼 포장하고 있으며 새로운 역사왜곡이라는 비판이 일고 있음을 지적했다. H신문도 같은 논조로 반박했다. 전후 아시아 경제성장이 일본의 개발원조 덕분이라는 왜곡된 인식을 심어줄 수 있다는 점을 문제로 지적했다. 특히 포항제철 설립의 경우 청구권 자금의 일부가 전용된 사실을 도외시한 채 가해국인 일본이 스스로 원조국 행세를 하는 것은 지나친 행위라고 했다.


자금원이 청구권자금이든 원조든 일본의 대한경제협력이 한국의 경제성장에 미친 영향에 대해 객관적인 검증은 제쳐놓고 이념을 초월하여 반일 민족주의적 색채로 반발하는 것은 바람직한 것이었을까. 이에 대한 정답을 찾는 것은 그리 간단한 일이 아니다. 일본의 대한경제협력에 대해서는 보다 객관적인 분석과 균형잡힌 판단이 필요하다. 현시점에서는 적어도 다음과 같은 양시론적인 평가 정도가 국민정서와 유리되지 않으면서 사실에 접근하는 것 중의 하나가 아닐까 싶다. 한국이 전후 개도국 중에서 선진국으로 변신한 유일한 나라가 된 데는 1965년 한일 국교 정상화가 일부 도움이 된 것은 부인할 수 없다. 당시 일본은 한일 간에 수직 분업체제를 만들고 그것을 지속하겠다는 의도를 갖고 있었지만 한국은 여러 분야에서 일본을 따라잡고 추월할 수 있었다.

사실이 어느 지점에 자리하든 여전히 국내에서 청구권자금의 성격과 역할, 식민지시대의 상황 등과 관련하여 논하는 것에는 많은 어려움이 따른다. 지원 실시시기부터 현재까지 반세기 이상 경과했고 한국경제가 엄청나게 변모함에 따라 일본이 실시한 자금협력이나 기술협력의 흔적을 찾아내는 것이 간단한 작업은 아니다. 또한 한일 과거사에서 유래하는 문제로서 청구권자금이 갖는 특수성도 논의를 어렵게 만든다. 일본은 청구권자금을 경제협력의 일환으로 이해하고 있지만 통상의 ODA와는 구별되는 전후처리적, 배상적 성격을 동시에 갖고 있다는 점이 문제를 복잡하게 만든다. 나아가 한일관계의 파탄이 우려되는 상황에서 일본이 과거에 자금협력과 기술협력을 제공한 것을 한국에서 논의하는 것 자체가 매우 민감한 이슈라는 점이다. 식민지근대화론, 위안부 및 강제징용 문제 등은 더할 나위 없이 휘발성이 높다.

일본의 대한수출규제로 촉발되고 확대된 한일갈등 국면에서 '반일종족주의' 논쟁이 뜨겁다. 보수와 진보를 가리지 않고 반아베·극일의 기치를 높이 올리고 있는 가운데 뉴라이트 입장에서 일본을 변명하는 신친일선언과 같다는 비판도 거세다. 여권 인사는 물론 보수 야권에서도 격렬하고 원색적인 비판이 이어진다. 한편으로 유튜브 등 SNS를 통해 다양한 수준의 찬반 주장이 봇물 터지듯이 쏟아져 나오고 있다. 급기야 대학 강의실에서도 신친일선언이 거침없다. 책의 대표저자는 이렇게 말한다. 학문의 영역은 감정이 아니라 이성의 영역이다. 세간에서 당연하게 여겨지고 있는 식민지시대의 상황이 실은 객관적인 진리가 아니라는 것을 최신의 연구결과를 인용하여 직선적으로 그 내용을 설명한 것일 뿐이라고. 이 책을 접하는 일본의 속내가 불감청고소원일 것은 지적할 필요도 없을 것이다.

여기에 서초동 집회와 광화문 집회의 세대결 양상까지 중첩되면서 대한민국은 어느 일본 저널리스트의 표현대로 '갈등의 선진국'임을 확실히 보여주고 있다. 그렇다고 모든 상황이 비관적으로 흐르고 있지만은 않다. 오히려 잘된 것이 아닌가 생각게 하는 측면도 있다. 이참에 반일종족주의와 신친일종족주의를 넘어 포용적 내셔널리즘으로 나아갈 길을 찾을 수도 있기 때문이다. 피해갈 수 없는 갈등이라면 부딪혀 해소하는 것이 마땅하다. 반일종족주의론이 통계와 축적된 연구성과에 입각해서 몰매 맞을 각오로 충격적인 문제제기를 하고 있는 만큼 이에 대해서는 제대로 된 대응이 요구된다. 반일종족주의론에 맞서는 논의가 학문적, 대중적 수준에서 혹시 인상주의적, 구호적 주장, 정치적 마타도어에 그치고 있지는 않은지 냉철히 돌이켜봐야 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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