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진용 전 인천경제자유구역청장

 

고요하고 평화로운 바다라는 의미를 지닌 태평양은 5대양 중에서 가장 크다. 수심 또한 상상을 초월해 지상에서 가장 높은 8848m의 에베레스트산을 넣고 그 위에 한라산을 올려 넣고도 남는 수심 1만994m의 마리아나 해구가 있다.
태평양 하와이는 타히티에서 살던 폴리네시안들이 마르케사스 섬을 거쳐 수천㎞를 항해해 정착한 것으로 학계는 보고 있다. 타히티는 프랑스 후기인상파 화가 폴 고갱(Paul Gauguin)이 1891~93년 동안 살았던 경험을 바탕으로 자신의 최대 걸작이라 자평한 '우리는 어디서 왔는가, 우리는 누구인가, 우리는 어디로 가는가'를 탄생시킨 곳이다.

이 망망대해에 사람이 살게 된 경로가 고고학과 인류학, 진화생물학 등의 연구와 유전자 분석기술에 의해 속속 밝혀지고 있다. 아프리카에서 출발한 현생 인류 중 일부 무리가 중동과 아시아를 거쳐 태평양의 여러 섬에 널리 정착하게 되었다는 것이다. 이들이 섬을 이동할 때는 별자리와 조류, 바람을 이용하고, 카누에 아웃리거를 장착해 크기에 비해서 안정성을 확보하는 지혜를 발휘했다. 그러나 어떤 섬이 어디쯤 있는지 모르는 상태에서 카누로 항해한다는 것은 모질도록 험한 여정일 수밖에 없었다.

폴리네시안들이 태평양을 항해하고, 마젤란이 세계 일주를 하고, 이보다 앞선 1492년 콜럼버스가 아메리카대륙에 도착했다. 1778년 제임스 쿡이 하와이를 탐험하고, 찰스 다윈이 비글호를 타고 1835년에 갈라파고스를 조사할 때에 한반도의 우리는 무엇을 했을까? 마르코폴로가 중국에 오고 벨테브레(박연)와 하멜이 제주도에 도착했을 때에도 우리의 시야는 중국과 일본, 북방 오랑캐를 넘지 못했다. 세상 너머를 이해하려거나 세상 밖으로 나가려는 생각은 국가적 이슈와 정책으로 성숙되지 못했다.

이 모든 것을 깨달은 지금 우리는 어떠한가. 강대국 앞에서 왜소한 몸집으로 겪어야했던 민족적 수난과 질곡을 극복하기 위해 우리는 역사적 교훈을 바로 새기고 있는가. 국민적 열정과 에너지가 제자리를 찾아 우리의 미래를 개척해 나가는 길목에서 불타오르고 있는가. 우주와 과학기술 시대를 열어갈 최고의 두뇌를 모으고 세계 최고의 인재를 양성하기 위해 혁명적 기획과 집중투자, 그리고 교육시스템을 갖추고 있는가. 인간의 난치병을 정복할 바이오의학 분야나 전략산업 분야에 우리는 얼마나 효율적으로 대응하고 있는가.

마젤란의 세계일주는 지구가 둥글다는 것을 몸으로 증명한 최초의 쾌거였지만 본인은 정작 필리핀 원주민에게 죽임을 당하고 만다. 제임스 쿡은 태평양을 탐험하며 그 많은 섬들의 위치와 이름을 지었다. 또 태평양 지도를 만들고 서양인 최초로 하와이를 발견했지만 자신은 이듬해 하와이 원주민들에게 죽임을 당했다.
모험이란 값비싼 대가를 치를 수 있는 위험성을 본질적으로 내재하고 있다. 그 모험과 도전 위에서 역사는 발전해왔다. 그러기에 모험과 벤처에 대한 가치와 특성을 이해할 필요가 있다. 우리의 찬란한 역사에서 행여라도 부족한 것을 찾아본다면 바로 이러한 과감한 도전의식과 탐험정신이 아닐까.

하와이 오아후섬 해안가 마카다미아 너츠 농장에는 거북이 두 마리가 서로 다짐하듯 속삭이는 족자가 걸려 있다. '에 호 오마우 카 홀로모아나(E ho omau ka holomoana, 계속 항해해 나가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