화성사건 대부분 귀갓길·통학로서 발생

화성사건의 피의자 이모(56)씨가 자백한 14건의 살인이 모두 드러나면서 그가 저지른 범행의 특성도 속속 규명되고 있다.
그는 자신의 생활권에서 크게 벗어나지 않은 채, 주변에서 일상을 살아가는 여성들만을 집요하게 노리는 범행을 5년여간 이어갔다.

16일 경기남부지방경찰청 수사본부에 따르면 그의 첫 범죄행각이자 화성사건의 1차 범행은 1986년 9월15일 당시 자신의 본적지인 화성군 태안읍 진안1리에서 3㎞도 떨어지지 않은 안녕리에서 발생했다.
피해자 이모(당시 71세)씨는 바쁜 농번기에 딸의 집에서 하루를 묵은 뒤 "아침을 먹고 가시라"는 딸의 말을 뒤로하고 텃밭을 돌보기 위해 오전 6시쯤 집을 나섰다가 딸의 집에서 고작 도보로 10분여 남짓 떨어진 곳에서 싸늘한 주검으로 발견됐다.

맞선을 보고 돌아오던 길에 희생당한 20대 피해자도 2명이나 있다. 2차 사건의 피해자 박모(당시 25세)씨와 4차 사건의 피해자 이모(당시 21세)씨는 각각 1986년 10월20일과 12월14일에 맞선을 보기 위해 상의 블라우스로 단장하고 집을 나섰다가 귀갓길 집 주변에서 습격당해 끔찍한 죽음을 맞았다.
2차 사건은 이씨의 집에서 1㎞도 떨어지지 않은 곳에서, 4차는 7㎞ 남짓 떨어진 곳에서 각각 발생한 것으로 조사됐다.

졸업을 앞둔 여고생이 취업을 위해 이력서를 제출하고 돌아오는 길에 희생당한 사건도 있었다.
1987년 1월10일 고등학교 졸업을 한 달여 앞뒀던 5차 사건 피해자 홍모(당시 18세)양은 일자리를 알아보기 위해 수원의 한 회사에 이력서를 내고 태안읍 황계리의 익숙한 귀갓길에서 변을 당했다.

6차 사건 피해자 박모(당시 30세)씨는 1987년 5월2일 오후 9시쯤 남편의 귀가를 기다리다 우산을 챙겨 들고 태안읍 진안리의 버스 정류장으로 향했다가 실종됐고, 5월9일 인근 야산에서 숨진 채 발견됐다.
이 밖에도 3차, 7차, 9차, 10차를 비롯해 이씨가 자신의 소행이라고 밝힌 1989년 '화성 초등학생 실종사건'은 모두 피해자의 귀갓길이나 통학로 등 익숙한 일상의 공간에서 벌어졌다.

이수정 경기대 범죄심리학과 교수는 "수년간 범행을 했음에도 꼬리를 잡히지 않은 점이 강력범죄에 대한 이춘재의 심리적 저항을 낮추고 대담성을 키워준 결과를 낳은 것으로 보인다"고 분석했다.
이씨는 최근 14건의 살인과 30여 건의 강간 및 강간미수 사건을 직접 했다고 자백했지만, 모두 공소시효가 끝났을 뿐 아니라 30여 건의 성범죄는 아직 실체조차 드러나지 않은 상태다.

경찰 관계자는 "공소시효와 무관하게 화성사건의 진실을 밝히기 위한 모든 수단을 동원해 끝까지 수사하겠다"고 밝혔다.

/이경훈 기자 littli18@incheonilbo.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