과거 주요통로 된 이유는
해상교류 탁월한 무역풍 불고 천연항·포구 만들기에도 좋아
이곳으로 흐른 한반도·중국 강, 문화·경제 나누며 고도화 성장
오늘날 눈여겨보는 이유는
고대서부터 현대 이르기까지 도시는 강을 끼고 발전하는데
삼면이 바다로 둘러싸인 한국 '해상강국'으로 발돋움하고자

 

 

동북아시아는 지정학적으로 바다를 접하고 있다. 바로 발해만을 아우르는 황해(黃海)다. 동북아시아 지역의 민족들은 고대로부터 황해를 통한 교류가 활발했다. 모든 민족은 황해로 모이고 황해를 통해 나아갔다. 모든 것은 황해에서 시작되고 이뤄졌다. 황해가 동아시아 문명의 중심이었던 것이다.

한반도와 중국은 황해를 마주보고 있다. 이런 까닭에 두 지역은 고대로부터 매우 활발한 교류를 이어왔다. 이는 동고서저(東高西低)의 한반도와 서고동저(西高東低)의 중국 지형이 만든 지리적 특성의 결과이기도 하다. 고대로부터 현대에 이르기까지 도시는 강을 끼고 발전한다. 한반도와 중국의 강들은 지형적 특성으로 인해 대부분 황해로 흐른다. 도시는 강을 따라 황해와 연결되고 황해는 다시 도시로 가는 길을 열어주었다. 대륙의 깊숙한 도시들이 번성할 수 있었던 것도 바로 황해와 연결되는 강이 있기 때문이다.

수많은 민족이 황해를 중시했다. 황해와 함께 명멸했다. 황해는 동아시아 역사 그 자체인 것이다. 우리는 이러한 황해의 역사성에 대해서 생각하지 않았다. 역사적 흔적이 남아 있는 육지만 중시했다. 황해는 버려진 역사였고 무관심의 대상이었다. 하지만 황해는 파도처럼 수많은 역사의 숨결이 넘치는 곳이다. 지금도 역동적으로 움직이는 곳이다.

황해는 한반도와 중국에 둘러싸인 바다다. 오직 남쪽만이 트여 있다. 황해는 동중국해와 경계를 이룬다. 전남 진도의 서쪽 끝에서 제주도의 차귀도 서쪽을 잇고, 그 선은 다시 중국의 상하이시(上海市) 충밍도(崇明島) 동쪽을 연결한다. 약 580㎞의 거리다.

황해는 남북 1000㎞, 동서 약 700㎞의 거리를 지닌 바다다. 전체면적은 48만6700㎡ 평방미터, 평균수심은 44m다. 전체면적의 56.5%가 수심 40m 이하로 얕다. 창장하구에서 약 300㎞ 해역까지의 수심은 30m 이하다. 남해의 평균수심 101m, 동해의 평균수심 1530m와 비교가 안 된다. 황해가 이렇게 얕은 바다가 된 것은 수천 년간 창장(長江)과 황허(黃河) 등의 하천에서 매년 엄청난 양의 토사가 황해로 유입됐기 때문이다. 황해의 가장 깊은 곳은 전남 신안군 홍도 서쪽으로 103미터다. 60미터 이상 깊은 곳은 모두 한반도 쪽으로 치우쳤다.

황해는 파랑(波浪)이 자주 일고 물길이 쉽게 바뀐다. 얕은 바다이기에 기상변화가 심하다. 조석간만의 차도 커서 연해의 조류도 매우 빠르다. 얕은 바다라고 우습게보다간 큰 일이 벌어진다. 황해 연안에 난파선들이 많은 것도 얕지만 변덕이 극심한 황해를 잘 보여주고 있는 것이다.

황해는 황허의 물을 받아 흐린 바다다. 삼면의 육지에서 밀려드는 수많은 담수(淡水)를 받아 염분도 낮다. 이러한 이유로 표면온도도 높다. 연교차가 20도 이상으로 수온변화도 심하다. 황해는 계절풍의 영향을 크게 받는다. 겨울에는 시베리아와 바이칼호에서 발달한 시베리아고기압이 필리핀 북부까지 영향을 미치며 황해에는 한랭건조한 북서계절풍이 분다. 여름에는 북태평양고기압이 발달하면서 고온다습한 남동계절풍이 분다.
황해의 바람은 계절에 따라 방향을 바꾸는 무역풍이다. 범선시대에는 바람이 중요했다. 해상무역의 일등공신이었다. 그래서 계절풍을 무역풍이라고 높여 불렀다. 여름과 겨울에 각각 확실한 무역풍이 부는 황해. 황해는 고대로부터 동아시아 해상교류에 좋은 조건을 제공해 주었던 것이다.

황해는 리아스식 해안의 보고다. 압록강 입구에서 전남 해남군 갑곶(岬串)까지의 직선거리는 650㎞다. 하지만 해안선의 길이는 4719㎞다. 굴곡이 심한 리아스식 해안은 수많은 만(灣)을 형성하여 천연항과 포구를 만들기에 적합하다. 한반도는 조석간만의 차가 크다. 그래서 강과 바다가 만나는 지점에 항구가 만들어졌다. 대동강 하구의 남포항, 예성강 하구의 벽란도, 한강 하구의 인천만 일대, 충남 당진군의 아산만 일대, 금강 하구의 군산항, 영산강 하구의 목포항 등이 모두 강과 바다가 만나는 곳이다. 중국도 마찬가지다. 산둥반도의 스다오만과 자오저우만, 장쑤성의 창장 하구, 저장성의 항저우만, 타이저우만, 원저우만 등도 황해와 내륙이 물길로 통하는 곳이다.

황해는 고대로부터 중국와 한국, 일본의 문화전파와 경제교류의 통로였다. 조지프 니덤이 말한 '가장 오래되고 가장 중심적인 문명'이 오고간 허브였다. 모든 강물이 황해로 흘러가듯 당대 최고의 기술문명도 황해로 모이고 황해를 통해 나아갔다. 황해는 문명의 교류뿐 아니라 새로운 문명을 촉진시키는 매개체였다.

조선술과 항해술의 발달은 인류의 해상활동을 더욱 왕성하게 하였다. 이전에 비해 보다 많고, 보다 넓고, 보다 빠르게 바다를 경영할 수 있게 되었다. 이제 바다는 두려움의 대상이 아니라 문명이 빠르게 전파되는 고속도로가 된 것이다.

바닷길의 발달은 황해를 각축장으로 만들었다. 제해권(制海權)의 장악은 국력을 강화하기 위한 필수사항이었기 때문이다. 그리하여 고대로부터 국가들마다 황해를 장악하기 위해 치열한 싸움을 벌였다. 교역에서 시작된 각축전은 급기야 '선점'과 '부의 창출'이라는 두 가지 목적달성을 위한 전쟁으로 치달았다. 이로 인해 황해는 전쟁의 터전이 되기도 하였고 결국, 황해를 차지한 자가 동아시아의 승자가 되었다.

황해는 무한한 자원의 보고이기도 하다. 수많은 생명체를 잉태하고 있고 엄청난 에너지 자원을 간직하고 있다. 하지만 오늘의 황해는 무분별한 남획과 오염으로 크게 멍들어 있다. 이는 결국 머지않아 우리의 삶을 파괴하는 부메랑이 되어 되돌아 올 것이다. 우리가 황해를 가꾸고 살려야만 하는 당위성도 이곳에 있다. 황해가 바로 생명의 바다이기 때문이다.

인천일보가 시도하는 일련의 탐사작업은 삼면이 바다로 둘러싸인 우리나라가 고대로부터 축적된 지식을 바탕으로 21세기 해상실크로드의 새로운 출발점이자 중요한 연계 거점이 되기를 희망하기 때문이다. 이에 '황해'를 심층적으로 살펴봄으로써 우리나라가 동아시아 해상강국으로 발돋움하는 전기를 마련하고자 한다.

/황해 특별취재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