회한의 한 해가 저문다. 불안과 좌절 그리고 시련과 고통으로 이어진 한 해였다. 다시는 되돌아보고 싶지 않은 한 해가 마감되는 것을 우리는 참담한 심정으로 보고 있다.

 1998년 戊寅年(무인년)은 환란으로 닥친 국제통화기금(IMF)한파에 연초부터 서민계층이 가장 혹독한 시련을 겪어야 했다. 기업이 쓰러지고 구조조정이란 이름 아래 직장을 잃고 거리를 헤매는 실업자군이 무려 1백50만명이 넘어섰다. 평생직장의 믿음은 산산이 조각났고 「퇴출」이란 신용어와 함께 거리로 내쫓겼다. 국민의 절반 이상이 1년간 소득의 30%이상이 줄었고 국민소득은 10년전 수준으로 추락했다. 상여금을 반납하고 봉급이 깎이는 수모를 겪으면서도 그나마 실업자가 되지 않은 것만 다행스럽게 생각하며 불안·초조속에 보낸 한 해였다.

 무엇보다 심각한 문제는 늘어난 가정붕괴 현상이다. IMF 이후 실직과 경제여건의 변화는 중산층의 몰락으로 이어졌고 중소기업의 무더기 도산에 개인파산자가 늘면서 노숙자 대열은 심각한 사회문제가 됐다. 생계형 범죄와 자살이 줄을 이었고 가정폭력과 이혼급증, 부모와 자식을 학대하는 반인륜적이고 반사회적인 병리현상이 늘어났다. 아무리 살기가 고단한 때이지만 우리사회의 가장 소중한 기초구성체인 가정이 해체되고 인륜이 무너지는 사회는 어떻게든 막아야 한다.

 이처럼 국민들에게 혹독한 시련을 안겨줬는데도 정치 지도자들은 어느 한사람 반성의 빛이 없고 뉘우침이 없다. 환란의 책임을 규명하고 그 원인을 따지자는 청문회도 1년이 넘도록 열리지 못하고 있는 것은 안타까운 일이다. 정치권이 경제위기 극복에 가장 큰 걸림돌이란 국민적 비판을 심각히 받아들여야 한다. 무엇보다도 국민들에게 자신감을 회복시켜주는 것이야말로 가장 중요한 일이다.

 98년을 보내기전에 우리 모두 한번쯤 자성하는 시간을 가졌으면 한다. 참담한 실패와 뼈아픈 경험을 교훈으로 삼아 절망의 경제를 희망의 경제로 되살리기 위해 우리 모두 시련을 딛고 일어서야 한다. 2000년대의 도약을 내다보는 전환기에서 우리 모두 새로운 자세와 각오를 다짐하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