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기우 인하대 법학전문대학원 교수

 

 최근 광화문과 서초동에서 '조국퇴진'을 요구하는 집회와 '조국수호'를 외치는 집회가 번갈아 열렸다. 촛불집회를 비롯하여 국민들이 대규모로 집회를 열어 시위하는 것을 가리켜 이른바 '광장정치' 또는 '거리정치'라고 한다. 이를 두고 심각한 국론분열이라고 우려하는 목소리가 작지 않다. 문재인 대통령은 이를 국론분열이 아니라고 하면서 "대의정치가 충분히 민의를 반영하지 못한다고 생각할 때 국민들이 직접 정치적 의사표시를 하는 것은 대의민주주의를 보완하는 '직접민주주의 행위'로서 긍정적인 측면도 있다고 본다"고 말했다. 비판적인 입장에서는 광장정치가 국회를 무력화시키고 대의정치를 파괴하며 온 나라를 아수라장으로 만든다고 한다.

 직접민주주의는 국민의 대표기관이 국민의 뜻에 반하여 결정을 하거나 결정을 하지 못하는 경우에 주권자인 국민이 직접 최종 결정을 하는 제도이다. 직접민주주의에는 집회민주주의와 표결민주주의가 있다. 집회민주주의는 아테네처럼 시민들이 광장에 모여 충분한 토론을 하고 다수결로 의사를 결정하는 방식이다. 도시 규모나 국가 규모가 커지면서 집회민주주의는 대의민주주의로 발전하고, 미국의 타운미팅이나 스위스의 주민총회 등 일부 지역에서만 직접민주주의로 잔존한다.

 표결민주주의는 특정한 안건에 대해서 충분한 토론을 한 후에 국민들이 투표소에서 찬반투표로 최종적으로 결정하는 제도이다. 표결민주주의는 1793년 프랑스 혁명헌법에 처음 등장하였으나 1860년을 전후하여 스위스에서 발전되고 확산됐다. 광장에 모일 필요가 없으므로 인구나 지역의 규모와 상관없이 대도시나 큰 국가에서도 직접민주주의를 실현할 수 있게 됐다. 즉, 표결민주주의는 규모의 한계를 극복한 정치적 발명품이다. 오늘날 직접민주주의는 일반적으로 표결민주주의를 의미한다.

 직접민주주의는 대의민주주의가 제대로 작동하지 못하는 경우에 국민이 직접 결정하는 제도이다. 대의기관이 국민의 의견을 수렴하여 잘 작동한다면 직접민주주의는 불필요하다. 이 점에서 직접민주주의는 대의민주주의를 보충적으로 보완한다. 대의기관의 잘못된 결정은 국민이 직접 찬반투표로 효력을 상실할 수 있다. 이에 국회는 항상 국민의 의사를 의식하고 반영하려는 노력을 하게 된다. 즉, 대의기관이 국민의 의사를 존중하게 되고, 국회에 대한 국민의 신뢰는 높아진다. 따라서 직접민주주의는 대의민주주의를 강화하는 데 기여한다.

 우리나라에서는 청와대 국민청원이나, 공론화조사 등이 직접민주주의로 둔갑하기도 한다. 청와대 국민청원은 다른 청원과 마찬가지로 개인으로서 국민이 국가기관에 의견을 말하는 것에 불과하고, 국민이 국가기관으로서 국가문제를 결정하는 직접민주주의와는 거리가 멀다. 공론화조사는 의사결정에 참여하는 주체를 추첨 등 선거 이외의 방법으로 결정한다는 점에서 국회의 결정과 차이가 있지만 여전히 대의민주주의 방식일 뿐이다.
 국민들이 광장으로 달려나와 구호를 외치는 것은 국회가 국민의 의사를 충분히 반영하는 의사결정을 못하기 때문이다. 그렇다고 광장에서 합리적인 토론이나 민주적 결정이 이루어지는 것도 아니다. 이 점에서 광장정치는 표현의 자유를 실현하는 수단이 될 수는 있지만 직접민주주의가 아니다. 국회의 기능 마비가 초래하는 병리 현상이 광장정치이다.

 광장정치로 문제가 해결되는 것은 아니다. 국회나 그 밖의 국가기관이 국민의결을 수렴하여 반영하는 경우에 비로소 문제가 해결되고 광장정치는 사라진다. 국회나 대통령이 국민의 의사에 반하는 경우에는 주권자인 국민이 직접 최종적인 결정을 통해 문제를 해결해야 한다. 대의기관이 제대로 작동하지 못할 때 직접민주주의는 광장정치를 사전적으로는 예방하고 사후적으로는 해소한다.
 조국 장관의 사퇴로 조국사태는 일단락되었지만 광장정치의 불씨는 여전히 남아 있다. 분노하고 절망한 국민들이 광장으로 쏟아져 나오지 않도록 국회와 대통령은 사회적 갈등문제를 정치적으로 해결해야 한다. 광장정치로는 갈등을 해소할 수 없다. 오히려 갈등을 증폭시키고, 사회적 불안과 비용을 유발한다. 국회와 정치권에서 협상을 통해서 문제를 해결하지 못해 국민들이 광장으로 달려가도록 방치하는 대신에 투표소에서 안건을 직접 결정할 수 있도록 직접민주주의를 정비하는 것이 필요하다. 19세기와 20세기의 민주주의가 선거권 확대의 역사였다면 21세기는 직접민주주의 확대의 역사가 될 것이다. 실제로 1990년대 이후 직접민주주의는 세계적으로 확산되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