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규환 인하대 명예교수

 

'조국퇴진이냐 검찰개혁이냐'라는 국론분열 정국에서도 확인해야 했다. 잘못된 이분법적 양자택일 사상이 뿌리깊다는 것과 그런 블랙홀 폭풍 속에서도 글로벌 시대에 세계를 복합적으로 조망해야 하는 과제를 망각하고 있다는 것이다. 올해는 레오나르도 다 빈치 타계 500년이다. 그 기념행사가 루브르미술관에서 진행되고 있다. 이 행사에서 이탈리아에 소장되었던 작품들도 볼 수 있다. 프랑스 대통령이 이탈리아의 협조를 받아내는 외교적 협상력을 발휘했다는 후문이다.

다빈치는 오늘날 르네상스적 지식인이라 부르는 전형이다. 그는 미술 이외에도 음악학, 해부학, 지질학, 천문학, 수학, 식물학 등 거의 모든 분야에 관심을 가졌다. 최근 빌 게이츠가 그의 연구노트를 고가에 구매하여 그 유명세를 다시 확인했다. 그런데 정작 그의 핵심전공이라고 말하는 회화미술에서 작품 수는 너무도 초라하다. 그의 완성작으로 볼 수 있는 확실한 작품은 9점에 불과하다. 그의 작품으로 간주할 수 있는 이른바 추정 작품을 포함한 작품 수도 최대 20점을 넘지 않는다. 또한 그 가운데에는 제자들과 공동 제작하거나 다른 화가들이 첨가한 것들도 있다.

<모나리자> 작품에 사용한 원근법도 안개(스푸마토)기법도 그가 처음으로 사용했던 것은 아니었고, 이 기법을 일관성 있게 적용한 것도 아니었다. 확실한 그의 완성작 <모나리자>는 일종의 미스터리 드라마성을 가지고 있어서 유명세를 불러모은다. 작품 모델조차 누구인지 여전히 논쟁적이고 애매하다.

작품은 그 자체로 작품 내용 모든 것을 말해주지 않는다. 작품 밖의 요소들도 파악해야 총체적 이해에 이른다. <모나리자>는 작품 밖의 요소들이 아직도 불분명하다. 주인공 미소가 비애냐 유혹이냐 하는 쟁점도 그 한 예이다. 주인공과 미소를 둘러싼 일종의 미스터리가 생겨서 화가의 유명세로 회자된다. '세례자 요한'이라는 제목의 그의 작품은 <모나리자> 논의에서 함께 언급되는 작품에 속한다. 황금비율이 적용된 이 주인공 얼굴과 <모나리자> 얼굴이 비슷하다는 분석결과가 있다. 얼굴의 남성성과 여성성 사이의 '애매성'을 지적하는 논평이 그림에 따라다니며 그의 동성애 성향과 더불어 늘 붙어 있다. 십자가는 배경의 제법 어두운 공간에 있다. 손가락은 십자가보다는 위를 향하고 있다. 그 손은 거친 광야의 남성 손이 아니다. 노동하지 않는 여성의 손이다. 손가락 거친 마디들이 없는 매끄럽게 흐르는 미적 손의 미학사상에 잘 부합하는 미술사적 손이다.

성경에서 그는 광야에서 메시아를 만나기를 위해 고행을 거듭하던 성인이다. 그의 작품에서는 그러한 고행은 커녕 그 흔적도 읽을 수 없다. 그리고 제법 어둡게 처리한 가슴을 감추고 있는 듯한 왼손과 그 손가락 일부는 여성의 그것이다. 그리고 그 포즈는 베누스 푸디카 포즈로 해석할 수 있다.

그는 진리가 확정적으로 존재하는 것은 아니라고 주장하는 애매성의 철학적 사상을 가지고 있었던 현상학적 철학자는 아니었다. 그의 드로잉 <비트루비우스 인간>은 확실한 기하학적 사유 체계를 보여준다. 비트루비우스의 인체비례론 그림은, 그의 미학사상이 사상사적으로 어떤 입장에 있었는지를 통찰하게 한다. 그 인체비례론은 인간의 중심이 배꼽이라 파악했던 전근대적 사상을 반영하고 있다. 그것은 "이것이냐 저것이냐" 하는 이분법 사상에 속한다. 윌리엄 하비 이래 근대적 인간신체론에서 인간의 중심은 배꼽이 아니라 심장이다. 이것은 코페르니쿠스적 패러다임 전환에 조응하는 사상이다. 그의 지동설 연구노트 주장은 비트루비우스의 인체비례론에서 볼 수 있듯이 배꼽을 중심으로 기하학적 동심원을 그리는 사유와 조응하지 않는다. 그는 확실성 사상을 가지고 있었으나 <모나리자>에 대한 우리의 이해는 애매하다. 실체적 내용을 분명하게 읽어낼 수 있게 하는 사료들이 지금까지 충분하게 수집되지 못했고 그리고 연구내용은 애매한 상태에 있다. 주인공과 미소의 애매성은 작품 그 자체의 애매성이 아니라 연구의 빈곤과 미성숙한 성찰을 함축한다.

오늘날 확실한 것은 독일 바르부르크 학파가 말했듯이 "아는 만큼, 아는 대로, 보인다"는 것이고, 그리고 "이것이냐 저것이냐" 라는 이분법적 확실성 사상은 더 이상 타당하지 않다는 것이다. 조국은 퇴진했지만 이분법적 진영논리를 넘어서는 과제는 남아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