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흥수 서울대학교 예술과학센터 선임연구원

 

존경하고 의지하는 자랑스러운 스승이 한 분 계신다. 작곡을 처음 지도해준 작곡가 강준일 선생님이다. 선생님의 성품은 사리 판단과 분석이 예리하고, 옳고 그름이 매우 분명하다. 올바르다고 생각하는 바를 몸소 실천하는 분이다. 독학으로 작곡을 공부한 선생님은 많은 작품을 작곡했을 뿐만 아니라 다양한 분야의 학술 연구로 그 명성이 대단하다. 올해 선생님을 만난 지 38년이 된다.
깐깐한 잔소리와 지칠 줄 모르게 제자들을 지도한 선생님과 함께 살아온 긴 세월 동안 무수히 많은 꾸지람을 들었다.

선생님의 꾸지람은 무섭고 엄하기로 아주 유명하다. 불같은 성격으로 주변 사람들의 시선이나 체면을 봐서 정도를 더는 경우는 상상할 수도 없다. 잘못한 점에 대해선 때와 장소를 가리질 않으며, 주저함 없이 단호하게 야단치는 모습은 '국물도 없다'는 표현이 적합할 것 같다. 동석했다가 동료 선후배들이 꾸지람을 들을 때는 듣기 민망하기가 그지 없다. 그래서 때로는 선생님이 싫을 때도 많았다.
선생님의 불호령이 두려워서 피해다녔던 기억도 여러 번이다. 나와 동문수학한 선후배들 중에는 선생님과 멀찌감치 떨어져 지내는 이들도 제법 많을 정도다. 그러나 그들도 선생님을 존경하는 마음은 서로 다르지 않다.

4년 전 어느 날, 선생님은 심장마비로 아무 말없이 정말 홀연히 세상을 떠나셨다. 그때의 황망함과 슬픔은 이루 말할 수가 없었다. 그날 이후, 이따금 선생님과 소리 없는 대화를 하곤 한다. 세상을 살아가며 힘들 때, 인생의 기로에 서서 갈 길을 선택해야 할 때가 그때이다. 선생님께서 이전에 꾸짖었던 말씀의 조각들을 하나하나 다시 맞춰가며 지금 살아 계셨더라면 어떻게 말씀하셨을까 하고 생각에 빠져든다. 이제 나이가 들어 세상의 이치를 알아가는 나이가 되었는데도 여전히 그렇다. 선생님의 말씀 한마디가 있다면 뭔가를 결정할 때 훨씬 마음이 굳건하게 정해질 것만 같다.
선생님께서 각별하게 강조한 말씀은 게으름과 악(惡)함에 대한 경계와 이를 지속적으로 개선해야 한다는 것이다. 그러나 지속적으로 실천하는 것은 결코 쉽지 않다. 돌이켜보건대, 여러 분야에서 다양한 방식으로 선구적 활동을 해온 지성인이었던 선생님은 무엇보다 열정과 강인함이 넘치는 음악가로 잠시도 수련을 게을리 하지 않았다.

다음은 선생님과 동고동락하며 활동했던 서울음악학회의 서문이다. '음악은 숭고한 인간정신의 표현이며 영원한 아름다움을 추구하려는 인간의지의 표상이다. 또한 음악은 인간의 영혼을 아름답고, 깨끗하게 승화시키며 자연의 질서와 섭리를 깨닫게 한다. 우리는 거대한 역사의 흐름 속에서 이러한 이념으로 모이고, 연구와 활동을 통하여 그 뜻을 넓게 펴는 동시에 서로의 헌신과 단결을 통하여 우리 모두 나아가서는 이 사회, 민족, 국가가 음악을 통한 영원한 세계로 발전할 것을 바라고 또 믿는 것이다.'
지금 수백 명의 서울음악학회의 출신 음악가들이 각 분야에서 왕성한 활동을 하고 있다. 그리고 그 중심에 늘 선생님이 계신다. 어떻게 그 많은 일을 할 수 있었을까 하는 생각이 늘 드는 것은 비단 나만의 생각은 아닐 것이다. 선생님의 활동과 생각의 폭과 깊이를 몇 줄 글로 다 표현하기는 힘들지만, 서문에 담긴 뜻을 늘 가슴에 새기고 있다는 것을 아실 터이다.

며칠 뒤, 예정된 앙상블연주회를 위해 어린 제자들은 오늘도 선생님이 사용하던 경기 여주 작업실에서 밤마다 모여 여느 때처럼 연습을 계속할 것이다. 깐깐한 잔소리가 아니라 가까운 제자들이라 더 힘든 '아는 사람은 다 아는' 매서운 질책은 더 이상 없어도, 그들의 마음은 따뜻하고 또 든든할 것이라 생각한다. 강준일 선생님이 남겨주신 선물이라는 것을 말이다.
나도 교단에서 학생들을 가르치는 입장이다 보니 더더욱 스승이 그립고 보고 싶다. 그때는 몰랐는데 돌이켜보면 선생님 꾸지람의 마무리는 칭찬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