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동안 잠잠했던 아프리카돼지열병이 또 터졌다. 경기도 파주에 이어 김포에서도 다시 발병이 확인됐다. 이번 확진 판정은 일주일여 동안 잠잠하던 끝에 다시 나온 것이어서 긴장감이 한층 더하다. 안심해도 될지 조마조마하던 상황에서 발병이 또 확인되면서 일각에서는 이미 손 쓸 수 없는 상황에 이른 것 아니냐는 우려가 높다. 방역당국과 농가들의 상심과 피로도 극대화 된 상황이다.

한동안 추가 발병 소식이 없자 진정 기미에 들어간 것은 아닌지, 잔뜩 기대했던 파주시 공무원들과 농가들의 상실감은 이루 말할 수 없는 상태다. 왜 안 그렇겠는가. 도 농축산과 직원들의 경우 전화벨 소리만 울려도 깜작깜작 놀라는 지경이라고 한다. 사회적 피로도가 증가하는 것도 문제다. 몇 차례의 구제역 파동을 겪으며 돼지 살처분 광경을 고스란히 지켜봤던 국민들의 고통이 이만저만 아니다. 살처분 광경을 더 이상 보고 싶지 않다는 시민들의 호소를 아랑곳하지 않고 넘어갈 수는 없다. 자칫 양돈산업이 붕괴하는 게 아니냐는 일반의 우려도 기우 정도로 일축할 수만은 없다.

결국 방역이 문제다. 방역의 최우선은 예방이다. 중국과 북한에서 돼지열병이 확산하면서 이미 국내에서도 발병할 수 있다는 위기감이 팽배했던 터다. 방역당국은 그동안 뭘 준비했나. 이번 돼지열병 확진 판정 과정에서 드러난 가장 큰 문제는 농림축산검역본부가 있는 김천까지의 거리였다. 의심신고가 접수되면 가축방역관이 시료를 채취해 김천의 검역본부로 보내는 순으로 진행됐다. 촌각을 다투는 상황에서 300㎞에 이르는 검역본부까지의 거리는 가장 큰 장애물이었다. 헬기투입을 검토했으나 여의치 않아 포기했다.

그런데 알고 보니 수원에도 경기도 동물위생시험소가 있었다. 아프리카돼지열병 감염 여부를 확인할 수 있는 생물안전등급 '레벨 3'에 해당하는 실험실이다. 정부의 허가만 없을 뿐이다. 그런데 지난해 9월 돼지열병이 중국에서 발생했을 당시 이 문제가 논의됐다고 한다. 다만 협의가 마무리되지 않아 고시나 훈령개정이 미처 이뤄지지 못했다는 것이다. 실험실 등 방역을 위한 다양한 기반을 갖추는 일이 가장 기본적인 조치임에도 방역당국이 이제 와서 할 말은 아니지 않은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