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평생 전국 방방곡곡 '오방색'으로 물들이다
▲ 김종욱 단청장이 밝은 표정으로 '단청'에 대해 설명하고 있다. /박혜림 기자 hama@incheonilbo.com

 

▲ 불화 작업에 열중하고 있는 김종욱 단청장. /사진제공=경기문화재단 공식 블로그

 

▲ 김종욱 단청장이 채색한 단청 모습./사진제공=경기문화재단 공식블로그

 

 

6·25전쟁 피란 때 혜각 스님과 인연
안화사 생활한 지 5년 만에 붓 잡아
불국사·근정전 등 단청·벽화 그려
15년 전 수원에 작업실…작품 전념



청, 적, 황, 백, 흑이 한데 어우러져 오묘하다. 이 오방색이 불전의 서까래와 기둥을 아름답게 장식한다. 처마 밑 오방 무늬의 기품은 불전의 신성함과 장엄함을 더한다. 우리 전통유산인 '단청(丹靑)'을 보고 있노라면 그 화려한 색감과 오묘한 기운에 매료된다. 69년 동안 우리 전통 단청을 지켜온 김종욱(87) 단청장을 30일 만났다.

5가지 우리 색(色)을 입히다
단청(丹靑)은 음양오행설을 기반으로 청, 적, 황, 백, 흑 5가지 색을 이용해 궁궐, 사찰, 서원 등에 무늬를 그려 넣는 것을 말한다. 서까래나 기둥, 전각을 장식하는 용도뿐 아니라 부식과 습기를 막아 목재를 오래도록 보호하기 위한 기능도 갖고 있다.

대개 단청이라 하면 전각에 색을 입히는 정도를 떠올리지만 불화, 벽화, 공예품에 오방색을 그리는 것도 단청에 포함된다. 특히 한국의 단청은 중국과 일본에 비교해 단아하고 정제된 색감으로 기품을 더하고 있다.
이렇듯 위대하고 우수한 우리 전통 단청을 이어가고 있는 기능인들을 단청장으로 총칭하고 있다.

경기도무형문화재 제28호 김종욱 단청 장인은 손꼽히는 단청장이다. 건물에 색을 입히는 작업만 하는 단청장을 '어장(魚杖)'이라 부르고 불화까지 그려내는 단청장을 '금어(金魚)'라 부른다. 김 장인은 단청 작업은 물론, 탱화와 불화, 벽화까지 작업 가능한 국내 유일의 단청장이다.

그는 요즘 수원시 무형문화재 전수회관을 중심으로 진행되는 경기도 무형문화재들의 축제 '대가의 초대전'에 선보일 작업에 한창이다. 주변의 인기척조차 느끼지 못할 정도로 김 장인은 작업에 몰두하고 있다.

"17년 전부터는 산수화 작업도 함께 해오고 있습니다. 지금은 축제에 소개할 산수화 작업을 하고 있지요. 글자 역시 한자라도 틀릴세라 신중하게 써 내려가고 있습니다."

불국사부터 남대문까지 새기다
김 장인은 올해로 붓을 잡은 지 70년 가까이 됐다. 13살이 되던 때 6·25 전쟁으로 피란을 나온 혜각 스님을 만난 것이 계기가 됐다. 혜각 스님을 따라 개성 안화사로 거쳐를 옮기게 된 김 장인은 이 때부터 불화를 배우기 시작했다. 절에서의 그의 생활은 역경과 고난의 연속이었다. 청소를 하거나 선배들의 불화 작업 공간을 정리를 하는 등 허드렛일은 늘 그의 몫이었다. 그림을 그려보고픈 마음에 붓이라도 만지려 하면 선배들의 모진 구타 세례가 이어졌다. 김 장인이 처음 붓을 잡게 된 건, 절에 들어온 지 5년이 지나서였다. 그는 수십 년이 지난 일이지만 그때의 설렘을 기억한다.

"가장 힘든 순간을 꼽으라면 아마도 붓을 잡기 시작하기 전까지였을 겁니다. 배움의 길이 순탄치 않았거든요. 이런 과정을 5년이나 견디고 붓을 잡게 됐을 때 얼마나 설레던지…. 아직도 그때의 기억이 선명합니다."

1978년 경주 불국사를 시작으로 경복궁 근정전, 덕수궁, 창경궁, 남한산성 수어장대, 수원화성 방화수류정, 통도사, 직지사, 월정사, 국보 1호 남대문까지 그의 손길이 닿지 않은 곳을 찾는 것이 빠를 만큼 단청, 벽화 작업을 해왔다.

특히 88올림픽을 앞두고 1987년에 추진된 남대문 단청 작업에도 김 장인의 손길이 닿았다. 그러나 21년 뒤인 2008년, 방화로 인해 남대문이 전소되면서 그가 새긴 남대문 단청은 지금은 볼 수 없게 됐다.

"불타는 남대문을 보며 한없이 울었습니다. 몇 날 몇 달을 꼬박 작업하면서 정말 혼을 다했었지요. 현재도 부실 복원이 이뤄지진 상태로 방치된 남대문이 안타깝습니다."

유형유산도 무형문화재가 만든다
단청장으로 지내온 김 장인이 주목받기 시작한 것은 문화재보호법 시행과 동시에 경기도무형문화재로 지정된 1999년부터다. 지정 이후 1년 만인 어느 날, 그가 단청장의 꿈을 키웠던 북한에서 전시회를 갖게 됐다.

"당시 북한 관계자들의 극진한 대우를 받았습니다. 북한 무형문화재들 역시 단청에 대해 상당한 관심을 보였지요. 북한의 단청 기술력은 우리나라 못지않게 세밀하고 뛰어납니다. 북한 무형문화재들은 문화유산 보존에 대해 적극적인 태도를 보였어요. 고구려쌍령총벽화를 두고 열띤 토론을 벌였었죠."

한 평생 단청장으로 전국을 떠돌며 살아온 그가 정착하게 된 것은 15년 전 수원시 무형문화재 전수회관에 작업실이 생기면서다. 오전 9시부터 오후 5시까지는 하루 꼬박 작업에만 매달린다. 그가 작업할 때 가장 크게 신경 쓰는 부분도 사념을 없애고 온전히 작품에만 집중하는 것이다. 마치 수행하는 불자의 모양새다. 70년 가까이 부처를 그려왔던 탓일까 그의 인상에선 여유로움이 느껴진다.

최근 그의 작업실은 단청과 불화를 공부하기 위해 찾은 학생들로 북적거린다. 모처럼 무형문화유산에 대해 보여준 작은 관심에 김 장인은 활력을 얻는다.

"매주 수요일, 한 달에 한 번 13명 정도의 학생들이 찾아옵니다. 젊은이들이 이렇게 문화유산에 관심을 가져주니 한없이 기뻐요."

어느덧 단청분야의 원로가 된 김 장인에겐 작은 바람이 있다. 그는 무형문화재에 대한 많은 관심이 위대한 우리의 문화유산을 지켜낼 수 방법이라고 강조한다.

"한번은 일본 항공사가 운영하는 비행기에 몸을 싣고 일본으로 가는 길이었죠. 기내 안에서 안내 방송이 흘러나오더라고요. '한국의 단청 무형문화재 김종욱님이 타고 있습니다'라면서요. 이토록 일본이 무형유산에 대한 가치 존중과 인식이 우리와는 조금 다르구나 하는 생각에 아쉬움이 들었습니다. 유형유산도 무형문화재가 만드는 것들이죠. 무형문화재에 대한 많은 관심이 필요합니다."

/박혜림 기자 hama@incheonilbo.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