화폭 너머 세상을 그린 여성미술 선구자
▲ 김옥순 화백은 인천문화재단과 가진 인터뷰에서 마산여중 미술부에서 미술교사의 바다를 그려내라는 과제를 받고 "작은 스케치북에 큰 바다를 그리라는데 그게 안 되는 거야. 원근감도 모르고 그랬거든. 그래가지고 어떻게 그리다가 그려내긴 했는데…"라고 말했지만 그렇게 그려낸 그림이 우수상을 받았다.

 

▲ 김옥순의 대표작 '魚'

 

-첫 번째 세상 '바다'

중학교 미술시간 바다 스케치
'작은 스케치북에 어떻게 담을까'
시작된 고민은 미술과 인연으로


-두 번째 세상 '국전 대항'

인맥·학맥 좌우되는 성적에 포기
스스로 개인전 열며 예술 활동
1973년 여류작가회 창립 견인 등
남성 중심 환경 속 변화 이끌기도






미술뿐만 아니라 모든 문화 예술 영역에서 여성 예술가들이 상대적으로 소외되었던 시절, 김옥순 화백은 당시 남성 중심의 문화예술 환경의 견고한 틀을 깨고 화단에 나와 많은 선구적 작업을 펼쳤다.

그것은 김옥순 개인의 예술적 성취를 넘어 당시 인천의 미술지형에 있어 의미 있는 변화를 가져온 매우 중요한 시도이자 작업이었다고 할 수 있다.

중학교 교사로서 40여 년 간 후학들을 양성하고 '인천여성작가회', '한국여성작가회'를 주도적으로 이끌어 온 그녀가 이룬 것이 단지 화폭 안의 작업으로 한정될 수 없는 이유는 바로 그 때문이다.

김옥순은 1931년 9월23일, 경상남도 창원군 이동면 갈전리에서 독실한 기독교 집안의 10남매 중 둘째로 태어났다.

하지만 해방 전후의 열악한 의료 환경으로 인해 10남매 중 일곱은 어린 나이에 안타깝게 세상을 떠나고 언니와 남동생만 생존하였다.

다행히 일제 강점기 시절 포목상을 운영했던 아버지 덕분에 어려운 시절이었음에도 불구하고 보리밥을 먹은 기억은 그리 많지 않았다.

초등학교는 입학 적령기인 8살에 이질을 앓아 다소 늦은 나이인 10살, 포목상을 하는 아버지를 따라 이사 간 곳인 밀양군 하남면에 있는 대사초등학교(일제 강점기 때는 심상소학교)를 다녔다.

해방되던 해에 졸업을 하였고, 곧바로 부산여중에 입학하였으나 얼마 후 가족들이 다시 마산으로 이사를 오게 되어 김옥순 화백 역시 마산여중으로 전학을 했다.

그리고 학교 미술부에 들어가게 되었는데, 그녀가 미술과 인연을 맺은 것은 바로 이때부터다.

당시 김옥순 화백의 성정을 알 수 있는 재미난 일화가 하나 있다.

미술시간, 무학산 중턱까지 학생들을 데리고 간 미술교사는 바다를 그려 제출하라는 과제를 내주었다.

하지만 스케치북을 펴놓고 바다를 그리려던 김옥순은 자신의 재주로는 도저히 바다를 그릴 수가 없었다고 한다.

왜냐 하면 바다를 담기에는 스케치북이 너무 작았다고 느껴졌다는 것이다.

이와 관련하여 그녀는 김학균 전 인천예총 사무처장과의 대화에서 다음과 같이 진술한 바 있다.

"그 언덕(무학산)까지 가서 미술 시간을 네 시간 엮어서 바다를 내려다보고 그리라는 거야. 스케치를 하라는 거지. 그런데 스케치북을 펴고 바다를 그리려고 하니까 내 재주로는 바다를 못 그리겠어. 아니, 스케치북이 요만한데(작은데) 이만한(큰) 바다를 어떻게 그려. 그게 안 되는 거야. 또 원근감도 모르고 그랬거든. 그래가지고 어떻게 그리다가 그려내긴 했는데…."

여학생다운 귀여우면서도 발랄한 감수성이 느껴지는 부분이 아닐 수 없다.

하지만 이날 김옥순은 사생(寫生)을 위해 산을 오르내리는 과정에서 해방되고 귀환한 동포들의 비참한 삶의 모습과 천연두를 앓던 아이들의 버려진 주검, 그것을 대충 덮은 돌무덤을 목격하는 등 사춘기 소녀의 감수성이 감당하기에는 무척이나 버거운 경험들을 하기도 했다.

그것이 충격이었던지 그녀는 몸이 아파 일주일 간 결석을 하게 되었고, 일주일 후 학교에 가자 급우들이 환호성을 지르며 그녀를 환영했다.

왜냐하면 바로 그녀의 그림이 우수상을 받아 '빨간 딱지'가 붙어 전시되어 있었기 때문이다.

그녀의 인생 최초로 자신의 그림에 대한 긍정적 평가를 받게 된 순간이었다. 이것을 계기로 그녀는 중고등학교 내내 미술에 대한 관심을 더욱 증폭시켜 나가게 된다.

그녀는 마산여고를 졸업하고 그곳에서 약 5년여 간 초등학교 교사생활을 하기도 했지만 미술에 대한 관심과 열망은 결국 그녀로 하여금 교사 생활을 그만 두고 미대(수도여자사범대학, 현 세종대학) 진학을 하도록 추동하는 동인(動因)으로 작용하였다.

물론 애초부터 미술과를 간 것은 아니었다.

국문과를 원했지만 주위의 권유로 처음에는 체육학과에 입학하게 되었는데 체육과목 공부가 너무 힘들어 전과를 원한다고 학교 측에 말한 후 마침내 미술학과로 전과하게 된 것이다.

그때 만난 대학 은사가 유명한 서양화가 변종하 선생이었다.

이후 2년간의 학부과정과 3년간의 연구원 생활을 마친 후인 1961년 인천성광학교(선인고등학교의 전신) 교사로 부임하면서 남구 도화동에 정착을 하게 되었고 본격적인 인천생활을 시작하였다.

당시 인천에 내려온 김옥순 화백이 가장 처음 만난 미술계 인사는 송도고에서 재직 중이던 황추 선생이었고 유일환 선생, 박영성 선생 등도 지근거리에 살고 있었다.

그리고 황추 선생의 권유로 인천미술협회에 가입한다.

인천성광학교에서 재직 중이던 김옥순 화백은 4~5년 후 판화가 김상유 선생이 동산학교를 그만두게 되면서 그 후임으로 부임하여 30년 간 교사로 활동하게 되는데 이때 길러낸 제자 중 한 명이 중앙대 교수로 재직 중인 이종구 화백이다.

그녀는 1959년 최초로 국전(8회)에 입선을 한 이후 9회, 10회, 12회 네 번 연속 입선을 이어갔다.

하지만 앞선 미술가들의 사례에서도 확인할 수 있었지만 국선의 공모 자체가 인맥과 학맥에 의해 좌우되는 현실을 목도하면서 "썩은 국전에 더 이상 작품을 내기 싫어졌기" 때문에 이후에는 국전 도전을 포기하게 되었다.

김옥순은 1965년 인천광역시 중구 신포동 자월 다방에서 첫 개인전을 열었는데 이 전시회는 인천에서 개최된 여성 최초의 개인전이었다.

5년 뒤인 1970년에는 신포동 은성 다방에서 두 번째 개인전을 열었고 이때를 전후하여 그녀는 중앙의 미술계는 물론 인천미술계에서 일정한 비중을 가진 다양한 활동들을 전개하게 되었다.

한국미술협회 인천지회 이사를 역임했고 '군자회', '신기회', '상형회' 등에 관계하면서 활발하게 활동하였으며, 특히 1973년 서울 신세계 화랑에서 창립대회를 가진 '여류작가회'의 경우는 초대 부회장으로서 발기를 주도하고 조직 건립의 견인차 역할을 하기도 했다.

그녀는 생전에 개최한 여러 차례의 전시회 때마다 매번 변화된 미술세계를 보여주었는데 이러한 변화에 대해 미술평론가 이경모 선생은 다음과 같이 평하였다. ]

"그간 쌓아왔던 방법론들을 포기하고 새로운 형식을 탐닉한다는 것은 그가 지니고 있는 치열한 작가정신을 보여주는 대목이다. (……) 선과 색에 의해 드러난 중첩된 대상들에서 솟구치는 에너지는 젊은이들이 그린 그림으로 착각될 정도였다. 하나의 패턴이 고유의 긴장감과 신선함이 소진되어간다고 느꼈을 때 그는 새로운 긴장감을 찾아 그의 예술의 폭을 끊임없이 넓히고 개척하여 갔던 것이다."(이경모, <인천미술계의 현장과 작가들>에서 인용)

이경모 선생이 언급했듯이 김옥순 화백은 한 순간의 예술적 정체도 용납하지 못하는 치열한 작가정신과 새로운 세계에 대한 탐색의 열망을 가득 품고 작품 활동을 이어왔던 미술계의 어른이었다.

그러한 그녀의 예술혼과 그것이 온전히 반영된 작품들은 여전히 인천 미술계의 든든함 밑거름이자 사표가 되고 있음은 두 말할 필요가 없을 것이다.

그렇기 때문에 더욱 더 그녀의 예술적 열망으로 가득 찼던 눈빛과 강강한 목소리, 훌륭한 작품들을 더는 이곳에서 만나볼 수 없게 되었다는 사실이 아쉬운 것이다.

하지만 생전 그녀가 보여 주었던 성정을 생각해 볼 때 그녀는 여전히 하늘에서도 인천의 미술계와 후배 예술가들을 응원하면서 흐뭇한 미소를 짓고 있을 게 틀림없다.

그래서 우리 역시 여전히 김옥순 화백이 너무나 고맙고 무척이나 그리운 것일 테지만….

김옥순 화백은 2012년 3월19일 지병으로 비로소 자신의 그림과 이별했다. 장례는 그녀의 후배 동료들에 의해 인천 미술인장으로 치러졌다.




김옥순은 …

■ 출생 및 사망
1931년 9월23일~2012년 3월19일

■ 학력
경남 밀양군 심상소학교(現 대사초등학교)
경남 마산여중
경남 마산여고
수도여자사범대학 미술과 학사 졸업 및 연구원 수료(現 세종대학교)

■ 주요 전시
1965년 개인전(자월갤러리)
1997년 개인전(동아갤러리)
2005년 개인전(인천신계계갤러리)
2015년 개인전(광주 가톨릭평생교육원)
2016년 개인전(1898갤러리)
1961~1991년 한국미협전
1972년 조선화랑 개관기념전 및 국제여류전(프랑스)
1984년 아시아현대미술전 등 참여

■ 주요 경력 및 수상
인천미협·인천여성작가회 회장
인천미전 심사위원
1984년 인천시문화상 수상
2005년 인천여성비엔날레 인천시장상 수상



/문계봉·시인 freebird386@daum.net·여승철 기자 yeopo99@incheonilbo.com
/사진제공=인천문화재단