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기환 논설위원

1950∼60년대 시절에는 대학을 우골탑(牛骨塔)이라 불렀다. 고고하게 학문에 전념한다는 의미의 '상아탑'을 비튼 말이다. 당시 농촌의 부형들은 보릿고개에 시달리면서도 유일한 재산인 소를 팔아 자식을 대학에 보냈다. 우리 대학들에 우뚝 솟아 있는 석탑건물들이 실은 소뼈탑인 셈이다. 경제개발이 시작된 1970년대부터는 돈골탑(豚骨塔)이 더 맞을 것 같다. 국민소득 증가로 육류 소비가 늘면서 농가들마다 돼지를 치기 시작했다. 내다 팔기까지 수년이 걸리는 소보다 돼지는 수익 회전이 빨랐다. 돼지 한 마리를 내다 팔면 서울 대학촌의 한달 하숙비가 나온다고들 했다. ▶돼지는 산돼지들을 길들인 가축이다. 동남아에서는 약 4800년 전, 유럽에서는 약 3500년 전이라고 한다. 우리나라도 기록에 남은 것만 2000년이나 됐다. 한국에서는 유독 삼겹살 선호도가 높아 전세계에서 수입해야 할 정도다. 소주 안주에는 구운 삼겹살 만한게 없어서라고 한다. 이 삼겹살 바람도 1970년대부터 시작된 것 같다. 가난한 시절에는 여럿이 나눠 먹는 탕이나 찌개가 전부였다. 소득이 늘면서 고기도 아낌없이 구워 먹을 형편이 된 것이다. 당시 대학가에는 먼저 취업한 선배가 후배들에게 삼겹살을 사 주는 것도 하나의 통과의례였다. ▶황금돼지 해에 돼지들이 수난을 당하고 있다. 2주일 전 발병한 아프리카돼지열병이 어디로 튈 지 모를 지경이 됐다. 특히 인천 강화에서는 이제 돼지 울음조차 들을 수 없게 됐다. 쉽게 살처분이라고 말하지만 현장은 아수라장이라는 보도다. 이전에는 살아 있는 채로 구덩이에 몰아넣어 파묻었으나 잔인하다고 해 바뀌었다. 먼저 3m 깊이의 구덩이에 살아 있는 돼지들을 몰아넣는다. 비닐을 덮어 밀폐한 뒤 가스를 주입해 안락사시킨 뒤 매몰하는 것이다. 본능적으로 죽음을 직감한 돼지들의 비명소리가 조용한 농촌을 흔들어 놓는다고 한다. ▶돼지가 주인공인 조지 오웰의 '동물농장'이 재조명되고 있다고 한다. 스탈린 시대의 빗나간 사회주의를 풍자한 것이지만 포퓰리즘과 트럼프 등 이상한 지도자들이 득세하는 요즘과도 맞아 떨어져서다. 농장주의 학대에 신음하던 동물들은 영악한 돼지 '나폴레옹'을 도와 농장주를 내쫓고 그들이 주인인 동물농장을 건설한다. 권력을 쥔 나폴레옹과 그의 친척 돼지들은 개 9마리를 비밀경찰로 삼아 살벌한 독재 체제를 세운다. 처음에는 "모든 동물은 평등하다"고 했다. 그러나 곧 "모든 동물은 평등하다. 그러나 어떤 동물은 다른 동물들보다 더 평등하다"라고 말을 바꾼다. 지금 한국사회를 온통 시끄럽게 하고 있는 저들은 어떤 동물인가. 그냥 평등한 동물인가, 아니면 더 평등한 어떤 동물인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