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촛불'이 될 그대라면 … '품'에 안아 드릴게요 
▲ 시민사회단체의 활동을 지원하고 공동 회의실과 토론회장을 공유할 수 있는 공간 '품'을 마련한 이달호 수원화성연구소장이 26일 열린 공간 '품'에서 포즈를 취하고 있다. /이성철 기자 slee0210@incheonilbo.com


모친 양품점하던 건물 2·3층 내줘
회원 400명 넘는 민족문제연구소부터
경기평화교육센터, 6·15본부 등 입주

도 학예연구사 1호로 '화성 전문가'
복원 힘쓴데다 지역사 연구 '문화상'
"역사관 세워 현시대 문제 직시해야"




서울과 대구시·충북도 등에서는 NPO센터나 공익활동지원센터, NGO센터 등의 이름으로 시민사회단체의 활동을 지원하고 공동 회의실과 토론회장을 공유할 수 있도록 하고 있다.
하지만 인구 1300만명이 넘는 경기도는 이러한 공유시스템이 없다.
최근 도내에도 개인이 직접 시민단체에 활동 공간을 지원한 이가 나섰다. 이달호(65) 수원화성연구소장이다.

▲시민단체에 열린 공간 '품'을 열다

이 소장은 지역의 어려운 시민사회단체들에 사무실과 공동 회의실 등을 무료로 제공하는 열린 공간 '품'을 이달 초에 열었다.

'품'은 돈이 없어 사무실을 마련하지 못하는 시민단체에 공간을 내주거나, 시민사회단체들에 공동 회의실이나 토론회장 등의 공유 공간을 마련해주는 곳이다. 그래서 '품'이다. 내가 주체로서 '품어 안는다', '품을 수 있다'는 의미와 객체로서 '품에 안긴다'는 의미가 중첩돼 있다. 품을 수 있는 공간, 안길 수 있는 공간이 됐으면 하는 바람에서 지은 이름이다.

"회원들의 자발적인 후원금에 의존하는 시민단체들은 재정적인 어려움이 커요. 그중에서도 제일 힘들어하는 게 목돈의 임대료가 드는 공간 마련입니다. 단체 상근자는 100여만원도 못 되는 월급을 받거나 아니면 알바를 하면서 봉사하는데 너무나 안타까웠어요. 지역 사회를 위해 활동하는 이들에게 조금이나마 부담감을 덜어주고 싶은 거죠."

품은 수원시 팔달구 정조로 팔달문시장 안에 있는 3층 건물에 있다. 애초 이 소장의 어머니가 양품점을 운영하던 곳이다. 이 소장은 이 가운데 2~3층 198㎡를 시민단체를 위해 내놓았다.

이 소장의 수원화성연구소를 비롯해 회원 400여명인 민족문제연구소 수원지부, 통일평화교육 교사만 20여명에 이르는 경기평화교육센터, 6·15경기본부, 6·15수원본부, 경기대학생진보연합, 수원4·16연대 등이 입주해 있다.

"개인 사무실을 마련하면서 2층을 쓰고 있었는데 이번 기회에 3층까지 확대했어요. 주위에서 임대료가 꽤 될 거라는 말을 하지만 열린 공간 품이 지역에서 활동하는 젊은 시민활동가들에게 디딤돌이 되는 것만으로도 내게는 보람이에요."

▲지역사 기틀 세운 '수원화성 전문가'

경기도 학예연구사 1호인 이 소장은 '화성 건설 연구'로 역사학 박사학위를 받는 등 정조 때 만들어진 '화성'의 손꼽히는 전문가 중 하나다. 1997년도에 수원시 학예직 공무원으로 들어와서 수원박물관 건립 일을 중점적으로 했다. 외국어대 러시아학과를 나왔지만 34살 늦깎이에 역사 공부를 시작했다. 양주·파주·구리 지역 등 경기도사 편찬위원으로 있다가 44살에 수원시 공무원(학예직)이 됐다.

"지금 하고 싶은 일을 하는 겁니다. 사람이 살면서 자신이 하고 싶은 일을 하는 게 쉽지가 않습니다. 그런 직장을 가지기도 쉽지가 않고요. 먹고 사는 일에 매이다 보면요. 저는 운이 좋은 겁니다."

공무원으로 일하면서 풍부한 유물 전시로 유명한 수원화성박물관을 만드는 데 일조했다. 또 그동안 해명되지 않았던 통천미석(通穿眉石:성곽에 난 무기 발사용 구멍)의 실체를 오랜 답사를 통해 밝혀내 화성 복원에 보탬을 줬다.

역사학자이자, 수원시 학예연구사로 지역의 역사자료 발간을 직접 추진했고, 수원 박물관 건립과 수원학 연구, 인문도시 수원의 기틀을 마련한 공로로 2015년 제32회 수원시 문화상(학술 부문)을 받았다.

"정조는 수원을 농업과 상업의 중심도시로 만들고자 했어요. 특히 자신이 꿈꾼 개혁의 도시로, 남부지역의 군사요충지를 만들고자 했던 뜻과 꿈을 담아 쌓은 것이 바로 화성이에요. 비록 정조의 죽음으로 수원화성에 세웠던 뜻을 다 이룰 수는 없었지만 수원은 충청도, 전라도, 경상도로 가는 교통의 중심지가 됐죠."
퇴직 후 수원화성을 알리고자 연구소까지 마련했다.

▲현시대 문제 직시할 '역사관' 있어야

이 소장은 수원화성뿐 아니라 민족문제에 대한 연구를 지속하고 있다. 민족문제연구소 수원지부, 4·27시대연구원 등에서도 활동하고 있다.

"주 전공이 역사예요. 석사 논문이 일본강점기 사회주의 운동에 관한 거였죠. 좋은 선생들을 만난 덕분인데, 당시만 해도 주류 역사학계에서는 근현대사 논문을 쓰지 말라는 분위기였어요. 친일파 척결이 제대로 되지 않았고, 군부독재 시대인 영향이 크죠. 이것이 아직도 영향을 미치고 있어요."

그는 제대로 된 역사관을 가져야 한다고 강조한다. 그래야 시대의 본질을 볼 수 있는 눈이 생긴다고 믿는다. 그가 현대사를 강조하는 이유다.

"자기가 사는 시간이 모두 현대사에요. 일제강점기 시절 우리나라 최고 엘리트가 세계 정세를 파악하지 못하고 변절했어요. 헛똑똑인 셈이죠. 지금도 마찬가지예요. 지성인이라면, 국민이라면 주어진 정보를 보는 게 아니라 본질을 봐야 해요. 제대로 된 역사관을 세워야 현재 우리 시대 문제를 바로 볼 수 있어요. 공부를 끊임없이 해야 하는 것도 현시대를 바로 보기 위해서예요."

그는 통일된 국가를 만드는 것이 중요하다고 믿는다. 그래서 민족 문제를 남북의 문제로만 보는 것이 아니라 미국과 일본, 국제정세까지 보면서 민족의 동질성을 찾고, 자주성을 어떻게 찾을 것인지 고민해야 할 때라고 설명했다.

이를 위해서는 올바른 사람들이 제대로 이야기할 수 있는 여건을 만들어줘야 한다는 점에 공감하고 있다. 그가 품을 만든 이유이기도 하다.

또 시민들의 적극적인 참여만이 세상을 올바르게 이끌어 갈 수 있다고 믿고 있어 소장 자신부터 실천하고 있다. 시민의모임, 환경운동연합, 민주평통, 공기관 이사 등 다양한 분야에 참여해 목소리를 내고 있다.
"촛불은 전 세계가 놀랄 정도로 우리나라는 저력이 있어요. 역사적으로 그래요. 외세 침략, 군부독재 정권 등에 끊임없이 저항하고 극복해요. 올바른 길을 추구하는 민족이기 때문이라고 봅니다."

▲이달호 수원화성연구소장은

한국외국어대학교 러시아어과를 졸업했으며, 한양대학교 사학과 석사를 거쳐 상명대학교 사학과에서 '화성 건설 연구'로 박사학위를 받았다. 경기도사편찬위원회 상임위원으로 향토사 편찬에 참여해온 그는 1997년 경기도가 채용한 지방학예연구사 1호다. 수원시 학예연구사를 거쳐 수원화성박물관을 역임한 바 있으며 '화성 축성방략과 성제', '화성건설', '화성건설의 물자조달' 등 여러 화성 연구논문을 펴내며 화성 연구에 몰두해 왔다. 저서로는 '18세기 상품화폐경제의 발달과 화성건설', '선각자 이준열의 삶' 등이 있다. 그는 ㈔민족문제연구소 수원지부장, 4·27시대연구원 연구위원, 수원문화재단 이사, 경기도수원월드컵관리재단 이사, 민주평통 자문위원 등 다방면에서 활동 중이다.

/최남춘 기자 baikal@incheonilbo.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