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경훈 경기본사사회부 기자

지난 9월18일. 한 소식에 전국이 들썩였다. 전 국민을 공포로 몰아넣었던, 대한민국 범죄사상 최악의 미제사건으로 남은 화성연쇄살인 사건의 유력 용의자를 33년 만에 특정했다는 것이다.
"정말 잡혔어? 그 망할 놈의 용의자는 누구야?", "역사적인 일이다. 정말 다행이야. 어떻게 잡았데?"
언론 보도 직후부터 화성연쇄살인(1986~1991년)의 공포를 직·간접적으로 경험한 부모님과 주변 지인들에게 연락이 줄기차게 왔다.

경찰도 용의자가 특정된 것에 대해 '천우신조(天佑神助)'라고 정의했다.
"용의자를 특정한 게 그리 대단한 일인가." 솔직히 그때까지만 해도 안일한 생각을 했다. 1988년생인 기자는 중학교 3학년, 영화 '살인의 추억(2003년 개봉)'으로 간접적으로 체험한 게 전부였다. 이후로도 관심을 갖지 않았던 터라 화성살인 수사 경찰, 유가족들의 '간절한 바람'을 알지 못했다.
취재를 하면서 생각은 바로 변했다. 역사적인 소식이라는 사실을 깨달았다. 역대 사건 중 최대 인력인 200만명 이상이 연쇄살인 진범을 잡기 위해 동분서주했고, 화성주민이 뜬눈으로 밤을 지새우며 불안에 떤 사실도 알게 됐다. 경찰 수사에도 범인이 잡히지 않자 화성 주민들은 눈물을 머금고 평생을 살아온 고향을 떠나기까지 했다.

이처럼 베일에 꽁꽁 감춰졌던 용의자가 33년 만에 처음으로 드러난 것이다.
현재 경찰은 10차례의 화성사건 중 5, 7, 9차 사건 증거물에서 용의자의 DNA가 나온 사실과 수사기록 등을 토대로 진실을 파헤치고 있다.
또 프로파일러 등 3명이 용의자와 친밀한 대화를 이어가면서 감정 변화를 이끌어 낼 '아킬레스건'을 찾아 입을 열게하는 면담기법을 활용하는 등 다각도로 수사를 펴고 있다.

"억울한 피해자의 원혼을 달래 줄 중대한 책무가 우리 경찰에 주어졌다."
배용주 경기남부지방경찰청장이 19일 경기남부청에서 열린 브리핑에서 말했다.
이미 공소시효가 완료돼 처벌은 못하지만, 역사적 진실은 반드시 밝혀질 것이라고 굳게 믿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