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3년 동안 미궁에 빠져있던 화성연쇄살인사건의 범인이 특정됐다. 눈부신 발전을 거듭한 과학수사가 이룩한 쾌거였다. 범인의 신발에 묻은 극소량의 흙에서도 증거를 확보할 수 있을 만큼 수사기법이 발전했다. 증거물이 오염되지 않도록 보관하는 증거물관리 시스템, 2004년 도입한 검시조사관 제도, DNA 데이터베이스 시스템의 구축 등은 이번 사건을 해결하는 데 있어 결정적인 역할을 했다고 한다. 하지만 그보다 30여 년 전 사건을 끝내 포기하지 않고 추적해온 경찰의 끈질긴 수사야말로 칭찬하지 않을 수 없다. 용의자를 특정할 증거물을 꾸준히 보관해오면서 해결의 실마리를 추적해온 경찰의 태도는 충분히 박수 받을 만하다.
전무후무할 정도로 엽기적이었던 이 사건은 화성이라는 한 지역에서만 무려 10차례에 걸쳐 일어났던 무자비한 살인사건이었다. 여성만을 골라 성폭행하고 살인까지 저질렀던 이 사건이 남긴 후유증은 아직도 씻을 수 없는 상처로 남았다. 수사를 받던 사람들이 자살을 하고, 당시 사건을 담당했던 수사관들도 트라우마에 시달려왔다.

화성시와 화성시 공직자들의 애로도 컸다. 화성에 대한 이미지가 살인사건과 관련하여 부정적인 추억으로 물들어갈 때마다 이를 지우고 개선하기 위해 백방으로 노력하던 모습을 우리는 고스란히 지켜봐왔다.
누구보다 화성시 주민들이 겪었던 맘고생도 잊을 수 없다. 지금도 늦은 시간 한적한 고갯길을 지나야 하는 운전자들에게서는 모골이 송연했다는 고백을 수시로 듣는다. 우회로를 돌아 먼 길로 가야하는 대중교통 이용자들의 애로는 더 말할 나위 없다. 미제사건의 우휴증은 경찰에 대한 불신으로 귀결되고 사회 전반에 대한 막연한 의심을 키운다. 이번 사건의 해결은 결국 '완전 범죄는 없다'는 선언과 같다.
하지만 아직도 안심하긴 이르다. 진범이 확정된 것은 아니기 때문이다. 세 차례의 증거만 확보되었을 뿐이고, 일부 수사는 여전히 진행 중이다. 게다가 경찰이 범인으로 특정한 당사자는 범죄사실을 완강히 부인하고 있다. 진범의 혈액형을 둘러싼 논란도 있다. 경찰은 남은 수사를 통해 사건의 실체를 좀 더 명확히 밝혀주기 바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