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DMZ 포럼 참석한 '판티 킴푹']
▲ 베트남 전쟁의 참상을 알린 '네이팜탄 소녀 사진' 속 주인공인 판티 킴푹(Phan Thi Kim Phuc·56) 베트남 인권운동가가 전쟁 당시 입은 네이팜탄 폭격 화상으로 흉터가 남은 자신의 팔을 탁자에 올린 채 카메라를 응시하고 있다. 그의 화상입은 전신은 17번의 피부이식 수술과 11번의 레이저 치료를 거쳤지만, 아직 선명하게 남아있는 흉터가 그날의 비극을 말해준다. /이성철 기자 slee0210@incheonilbo.com

"사진 속의 소녀를 새로운 눈으로 바라봐주세요. 지금의 저로 봐주세요. 저는 이제 생존자로서 평화를 이야기 하고 싶습니다."
19일 고양 국제전시컨벤션센터 킨텍스에서 개막한 'DMZ(비무장지대) 포럼'에 참석한 베트남 인권운동가 판티 킴푹((Phan Thi Kim Phuc·56)은 이같이 말했다.
9살이던 1972년 6월8일 고향인 사이공 서쫑 짤방 마을이 폭격을 당했을 때 불에 타버린 옷을 벗어 던진 채 울며 달아나는 그의 모습은 당시 AP 통신기자 닉 우트의 카메라에 담겨 전 세계에 퍼지면서 판티 킴푹이라는 이름보다는 '네이팜탄 소녀'로 알려지게 됐다. 그의 사진은 베트남전 종식을 앞당기는 계기가 됐지만 그는 "사진 속 소녀에서 벗어나고 싶었다. 숨기고 싶었다"고 토로할 정도로 한동안 사진 속에 갇혀 있었다.
그는 아무 것도 걸치지 않은 채 도로 위를 달리는 있는 사진 속 소녀에 대해 "괴롭고 무서워서 울고 있는 소녀"라고 표현했다. 전쟁 중의 공포는 극심했고 상실과 고통, 희망이 없던 시기였다.
특히 병원에서 14개월 동안 17번의 수술 끝에 목숨을 건지면서, 전쟁에 대한 두려움과 상처가 어린 시절을 잠식했다.

그는 "어린 소녀로서 내가 경험한 가장 강력한 것은 전쟁의 파괴력이었다. 네이팜탄이 내 몸의 60% 이상을 타게 해 상흔을 남겼고, 신경손상으로 인한 엄청난 고통으로 학교조차 다닐 수 없는 절망을 매일 겪었다. 네이팜탄이 나를 죽이지는 못했지만, 분노와 증오, 그리고 희망 없음이 나를 죽이고 있었다"고 말했다.
사진 속 소녀에서 벗어난 계기는 역설적이게도 사진을 다시 보게 되면서다. 더 이상 그 무엇도 선택할 수 없는 그 소녀를 그대로 받아들이기로 했다. 그러면서 자신이 겪은 고통을 어느 누구도 경험하지 않았으면 하는 소망이 생겼다. 그건 바로 평화였다. 이제 소망은 소명으로 바뀌며 그를 지탱하고 있다.

그는 "첫 아이를 갖고 사진을 다시 보게 됐고, 마음 깊은 곳에서부터 내 아이가 나의 고통을 겪게 하고 싶지 않았다"며 "이를 위해 선택한 것이 평화였다"고 말했다. 이제 그의 사진은 평화를 위한 도구가 됐다. 다 함께 평화를 만들어 가야한다는 메시지와 함께 전쟁 생존자로써 평화를 이야기할 수 있는 힘을 줬다.
그는 "평화는 저절로 생기는 것이 아니다. "용서는 어렵고, 화해는 노력을 요구한다"며 "하지만 사진 속 9살 소녀도 해냈다. 여러분도 할 수 있다. 중요한 사람이 되길 기다린다면 늦다. 지금 시작해야 한다. 희망을 포기하지 말아달라"고 당부했다.

/글·사진 이성철 기자 slee0210@incheonilbo.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