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원서전 송도중학교 교장

 

요즘 한창 시끄러운 조국 법무부 장관 관련 의혹을 수사하는 검찰이 조 장관의 딸을 소환 조사했다. 17일 법조계에 따르면 서울중앙지검 특수2부(고형곤 부장검사)는 전날 딸을 피고발인 신분으로 불러 입시 의혹이 제기된 각종 특혜 의혹에 초점을 맞춰서 물었다 한다.
전 정부의 국정농단 당시 '반칙과 특권'의 상징으로 여겨졌던 최순실의 딸과 조 장관 딸은 '금수저' 입시 특혜 의혹이라는 공통점이 있다. 지금 부모들은 공부하고 아르바이트 하느라고 지친 자녀를 보면서 자신이 조국이 되지 못한 것을 한탄하고 가슴이 찢어진다. 이 자조와 자괴가 청년들의 가슴 속에 쌓여 억장이 무너진다.

어제 오늘의 얘기가 아니다. '금수저'는 고금을 막론하고 인간 역사에서 거듭되어 왔다. 특히 나라가 올바르지 못할 때일수록 기승을 부렸다. 고려의 명문장가인 이규보의 글에도 이런 예화가 나온다. 고려 명종 임금이 잠행을 나갔다가 한 누옥의 대문에 '유아무와 인생지한(唯我無蛙 人生之恨 : 오직 나에게 개구리가 없는 것이 한이다)'이라고 쓰여 있는 것을 보게 되었다. 궁금증을 풀기 위해 찾아든 명종에게 이규보는 자신이 세 번이나 과거시험을 봤지만 낙방했다는 말과 함께 차분하게 그 연유를 설명했다.
'옛날, 노래를 아주 잘하는 꾀꼬리와 목소리가 듣기 거북한 까마귀가 살고 있었는데, 하루는 꾀꼬리가 아름다운 목소리로 노래를 하고 있을 때 까마귀가 꾀꼬리한테 백로를 심판으로 하고 노래시합을 하자고 했다.
그래서 3일 동안 목소리를 더 아름답게 가꾸고자 노력했다. 그런데, 까마귀는 노래 연습은 안하고 자루 하나를 가지고 논두렁의 개구리를 잡으러 돌아 다녔다. 그렇게 잡은 개구리를 백로 한테 뇌물로 가져다주고 뒤를 부탁한 것이었다. 약속한 3일이 되어서 꾀꼬리와 까마귀가 노래를 한 곡씩 부르고 심판인 백로의 판정을 기다렸다.

꾀꼬리는 자신이 생각해도 너무 고운 목소리로 노래를 잘 불렀기에 승리를 장담했지만 결국 심판인 백로는 까마귀의 손을 들어주었다. 한동안 꾀꼬리는 노래시합에서 까마귀에 패배한 이유를 알 수 없었다. 그러나 얼마 지나서 백로가 가장 좋아하는 개구리를 잡아다 주고, 까마귀가 뒤를 봐 달라고 힘을 쓰게 되어 본인이 패배한 사실을 알게 되었다.'
이때부터 백로에게 바친 개구리 먹이인 '와이로(蛙利鷺)'가 뇌물이라는 뜻으로 사용되기 시작한 것이라는데, 진실여부는 확인할 길이 없다. 이 글은 이규보가 임금한테 과거가 실력에 의해서 좌우되는 것이 아니라 돈도 없고, 정승의 자식이 아니라는 이유로 자신은 과거를 보면 떨어진다는 것이었다. 이는 불의와 불법으로 뇌물을 갖다 바친 자에게만 과거급제의 기회를 주어 부정부패로 얼룩진 나라를 비유해서 한 말이었다.
환궁한 명종은 알성시를 시행한다는 방을 내걸었다. 이때의 시제가 "유아무와 인생지한"이다. 그게 무엇을 뜻하는지 몰랐던 응시생들이 혼란에 빠져있을 때 이규보는 임금이 계신 곳을 향해 큰 절을 한 번 올리고 정답을 적어 냄으로서 장원급제하여 고려의 유명한 학자가 되었다. 그러나 엄밀히 말하면 이규보 역시 '금수저' 특혜다. 이건 문제지 유출 정도가 아니라, 수험생이 직접 문제를 제출한 셈이니 말이다.

'내가 하는 부탁이 남이 보면 청탁일 수 있다. 내가 하는 선물이 남이 보면 뇌물일 수 있다. 내가 하는 단합이 남이 보면 담합일 수 있다. 내가 할 땐 정과 의리지만, 남이 보면 부정과 비리일 수 있다. 남의 시선으로 나를 돌아볼 때 부정부패 없는 깨끗한 대한민국이 보인다.(공익광고협의회, 2014)'고 한다.
우리가 불의를 비난하는 이유는 불의를 행하는 것이 두려운 것이 아니라 불의를 당하는 것이 두려워서이다. 완전하고 결점 없는 정치적, 사회적 완벽함을 이루는 것은 단기간내에 불가능하며, 잘 이루어지지도 않긴 하지만 서로 도우며 진정한 배려와 아량의 마음으로 국가와 사회의 기본 원칙과 법질서를 이루어 나간다면 '금수저'도 없어질 것이다. 국가의 이런 여러 가지 폐단이 사라지고 원칙과 기본 질서를 이루어 갈 때 비로소 사회적 정의를 실현할 수 있을 것이다.

지금의 청년들이 실력이 아닌 배경이 없어 자신의 꿈을 이루지 못한다면 이건 사회 전체의 책임이다. 우리 국민들은 '금수저' 없는 공정한 세상이 되어서 공평한 보상을 받는 그런 사회가 되기를, 소중한 가치가 지켜지는 맑은 사회를 기다려 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