윤세민

'멜로'는 감성적이며 대중적인 연애 이야기다. 그런 만큼 영화 소재로는 가장 흔히 등장하는 단골 메뉴다. 아예 '멜로 영화'가 영화의 한 장르로 굳혀진 지 오래다.
영화 매체의 대중화를 고민하던 이들은 소비문화의 주축이었던 여성 관객을 타깃으로 멜로 영화를 내놓아 각광을 받기 시작했다. 주로 여성이 주인공으로 나오거나 애정 관계를 다룬 영화들이 멜로의 대세로 굳어졌다.
이후 멜로의 다양한 하위 장르로서 가족 멜로드라마, 범죄 멜로드라마, 심리 멜로드라마 등 다양한 분화가 이루어졌다. 1990년대 이후에는 특히 멜로를 기본 축으로 경쾌한 웃음을 결부시킨 로맨틱 코미디가 가장 사랑받는 멜로의 하위 장르로 입지를 굳혔다. 요즘은 옛 사랑에 대한 향수를 일으키게 하는 '레트로(복고풍) 멜로'가 새롭게 부상하고 있다.
'레트로 멜로'의 시작 <건축학개론>
2010년대 한국영화에서 '레트로 멜로'의 시작은 <건축학개론>(2012, 이용주 감독)이다. 건축학과 새내기 승민은 '건축학개론' 수업에서 처음 만난 음대생 서연에게 반한다. 둘은 함께 숙제를 하게 되면서 차츰 마음을 열고 친해진다. 자신의 마음을 표현하는 데 서툰 승민은 고백을 마음속 내내 품고 있다가 작은 오해로 인해 그만 서연과 멀어지게 된다. 서른 다섯의 건축사가 된 승민 앞에 15년 만에 불쑥 나타난 서연. 당황스러움을 감추지 못하는 승민에게 서연은 15년 전 약속대로 자신을 위한 집을 지어달라고 한다. 자신의 이름을 건 첫 작품으로 서연의 집을 짓게 된 승민, 함께 집을 완성해 가는 동안 어쩌면 사랑이었을지 모를 그때의 기억이 되살아나 두 사람 사이에 새로운 감정이 쌓이기 시작하지만, 15년이란 간극 속에 끝내 아쉬운 이별을 할 수밖에 없다. 대학 시절의 풋풋한 첫사랑과 아픈 이별을 이제훈과 수지가, 15년 뒤 재회 속 어색한 설렘과 아쉬움을 엄태웅과 한가인이 그려냈다.

이 영화는 첫 사랑에 대한 향수와 함께 1990년대 추억의 청춘문화를 소환해 주었다. 즉 전람회의 〈기억의 습작〉, 공일오비의 〈신인류의 사랑〉, 마로니에의 〈칵테일 사랑〉 등을 배경음악으로, 또 당시의 청춘 트렌드였던 삐삐, 무스, CD 플레이어 등을 등장시킨다. 이는 기성세대의 감성을 자극하며 영화의 흥행에 큰 기여를 했으며, 향후 멜로 영화는 물론 대중문화 판도에 여러 가지 변화를 가져오기도 했다.

'레트로 멜로'의 정점 <유열의 음악앨범>
그로부터 7년 뒤 <유열의 음악앨범> (2019, 정지우 감독)이 다시금 '레트로 멜로'의 정점으로 다가왔다. 영화는 1994년 <유열의 음악앨범>이 첫 방송을 타던 날, 제과점을 운영하고 있던 대학생 미수와 고등학생 현우는 라디오에서 흘러나온 노래처럼 우연히 만나 기적 같은 시간을 보내게 되면서 시작된다.
과거의 비밀을 간직한 채 조심스럽게 다가온 현우에게 점점 마음을 여는 미수, 그러나 둘의 인연은 안타깝게 어긋나게 되고 시간이 흘러 어느덧 1997년, 우연인 듯 운명처럼 다시 제과점에서 만나게 되는 둘. 그리고 2000년대에 들어서도 이어질 듯 이어지지 않는 기억 속의 서로를 그리며 아련한 사랑의 연대기를 그려 나간다.

영화 <유열의 음악앨범>은 누구나 그 시절, 그 순간의 감정에 공감하도록 감성을 터치한다. 누구나 단 한 번은 뜨겁게 사랑하고 차갑게 이별해야 했던 모두의 사연을 간직하고 있는 것처럼, 영화는 보편적으로 공감할 수 있는 그 기억들을 하나씩 하나씩 불러 모으는 것으로 관객들의 마음을 두드린다.
특히 두 주인공 역의 김고은과 정해인은 '레트로 멜로'다운 케미를 뿜어낸다. 보는 것만으로도 마음이 환해지는 매력적인 마스크로 닿을 듯 닿지 않는 듯 운명과 우연을 반복하는 미수와 현우로 분해 청춘의 사랑을 때론 설레게 때론 아프게 실감나게 그려낸다.
또한 영화 속 음악이 매력으로 다가온다. 영화 속 배경인 1990년대부터 2000년대까지 명곡이란 명곡은 모두 넣은 듯 적재적소에서 터져 나오는 사운드가 영화의 스토리와 함께 한다. 아울러 '레트로 멜로'인 만큼 당시의 시대적 상황과 배경을 고스란히 영화 속 소품과 공간에 밀도 있게 담아내고 있다.
아쉬운 것은 미수와 현우의 아픔과 이별의 스토리가 아무래도 개연성이 떨어지는 부분이랄까. 그런 점들이 감성 멜로 영상으로의 몰입을 방해하곤 한다.
영화는 '멜로'다. 바람도 제법 선선해졌다. 이 가을에 '레트로 멜로' 영화로 우리의 감성을 적셔보는 것도 '멜로스러울' 듯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