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을에 필요한 것을 직접 꾸리는 주민들

 

▲ 배다리 주민협의체 회원들이 협동조합을 만들어 10월1일 오픈을 앞두고 있는 '배다리 옛 손만두집'


태풍 '링링'이 한차례 마을을 휩쓸고 가면서 배다리에도 크고 작은 피해들이 있었다. 상가 간판이 떨어져나가고, 유리창이 깨지고, 천정이 내려앉아 비가 새는 집도 있었다.

700일이 넘도록 지켜온 '중·동구 관통도로 폐기 주민행동' 농성장 천막이 안타깝게 태풍에 견디지 못하고 쓸려나갔다. 주민들 몇 분이 비바람을 맞으며 흩어져있는 물품들을 챙겨왔다. 태풍이 멎은 후 떨어진 간판은 다시 세워졌고, 뚫린 천정은 이웃이 함께 보수를 했으며, 깨진 유리창도 다시 끼워졌다. 다행히 별다른 인명피해 없이 무사히 지나갔다. 산업도로부지 생태공원의 나무는 꺾이고 부러졌지만 풀들은 잠시 누웠다 다시 일어났다.

그리고, 가을이 왔다. 언제 그랬냐는 듯이 한해 노고를 위로하고 결실을 나누는 민족의 명절인 한가위 추석을 맞이하였다.

주말 내내 추석연휴를 맞아 배다리마을을 찾는 손님들로 책방거리는 여느 때보다 분주했다. 가족단위의 손님들이 책방을 가득 메우고 취향에 맞는 카페를 찾아 연휴를 마무리하고 있었다. 매주 일요일이면 한결같이 열리는 배다리 도깨비시장에서는 옛 추억을 만끽하는 달뜬 손님들로 화기애애하다. 고향을 다녀온 공간지기들은 서로의 안부를 묻고, 고향에서 싸온 명절음식들을 나눠 먹으며 이야기꽃을 피운다. 오랜만에 한가위의 풍요를 일상에서 나눠본다.

10월1일 오픈을 앞두고 있는 주민편의시설로 만들어진 '배다리 옛 손만두집'은 맛내기에 한창이다. 아벨서점에서 동구청 방향으로 50m 정도 거리에 있는 '배다리 옛 손만두집'에서는 주민들이 밤마다 모여서 만두소를 빚고, 김치를 담그고 시식회도 준비하고 있다. 배다리 주민협의체 일부 회원들이 협동조합을 만들어 처음 열게 되는 음식점이기도 하다.

어느덧 배다리마을은 6곳의 책방과 더불어 북카페, 식당과 참먹거리 가게까지 생겨났다. 마을을 찾는 사람들이 구경만 하고 그냥 가는 것이 아니라 오래 머무르며 소비할 수 있는 주민이 꾸리는 식당까지 들어선 것이다.

각자의 공간을 활용하여 전시관, 갤러리, 쉼터 등을 마을에 하나씩 하나씩 꾸려가면서 마을에 필요한 것들을 함께 만들어내는 곳, 배다리역사문화마을은 그렇게 만들어진 것이며, 앞으로도 그렇게 마을의 주인인 주민들이 뚜벅뚜벅 걸어가며 만들어 갈 것이다.

최근 민·관이 갈등을 빚어온 '중·동구 관통도로' 중 배다리를 관통하는 3구간은 주민의 피해를 최소화하는 조건으로 우여곡절 끝에 전면 지하화하는 것으로 합의가 이뤄졌다. 완전 폐기를 이루지 못한 아쉬움이 있지만, 지상공간은 지금까지 지키고 가꿔온 주민들이 원하는 배다리 역사문화마을로 거듭나는데 활용되기를 바란다.

'배다리는 우리가 지키고 가꾸어야 할 인천의 역사이다.' 태풍에 나무가 꺾이고 부러졌지만 유연한 풀들은 잠시 고개를 숙였을 뿐, 곧 다시 기지개를 활짝 펼칠 것이다. 태풍에도 지지 않는 풀들처럼 유연한 사고를 갖고 배다리 역사 하나를 바로 세웠으면 한다. 배다리의 일상이 오랜만에 누려보는 추석, 한가위만 같아라.

/권은숙 생활문화공간 달이네 대표·요일가게 나비날다책방 대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