황유원 


어둔방 창밖으로 들려오는 자욱한 빗소리 속에서 나는 기타를 치고 기타는 허공에 나무 한 그루를 심어 놓는다 기타의 목질이 허공에서 축축이 젖어가는 사이 나무는 비를 맞아 무럭무럭 자라나고 우리는 그 아래서 비를 그으며 젖은 머릴 말리며 다시 기타를 친다 내가 기타를 치면 참 평화롭다고 너는 말하지 나는 고작 어디서 무엇을 어떻게 틀렸는지나 생각할 뿐인데 너는 그게 평화롭다고 말하고 진심으로 평화로워지지 나는 어리둥절해지고 내가 치고도 듣지 못한 음악을 너의 입으로 전해 듣고서야 평화로워진다 오래된 나무 한 그루처럼 참 쉬운 평화 그러나 네가 없으면 도래하지 않는 너로 인해 듣는 참 평화 어떠면 이 모든 건 규칙적인 비의 리듬이 가져다준 착각일 뿐 풍부해진 대기가 소리의 울림들을 한껏 껴안고 선 공중에 잠시 머물고 있는 것일 뿐이라고 말해 보지만 말해 본들 이미 평화는 왔고 이유 따윈 중요치 않다 이미 전국은 무수한 빗소리를 거느리고 있고 오래 사람이 찾지 않은 숲 냄새 속에서 밤은 여전히 어두운 채였는데 그곳에서 듣는 빗소리 열린 창 하나만으로 씨앗 속 세상에서 씨앗 밖 세상을 듣는 듯했다

▶ 온 세상이 빗소리로 가득하다, 어두운 창 밖으로 빗소리 들려오고 너의 앞에서 기타를 친다. '너의 앞에서'. 전국은 무수한 빗소리를 거느리고 있고 오래 사람이 찾지 않은 숲 냄새가 가득하다. 세상은 여전히 어둡지만 나는 기타를 친다. 내가 기타를 치면 너는 참 평화롭다고 말한다. 나는 고작 어디서 틀렸는지나 생각할 뿐인데 너는 그게 평화롭다고 말하고 진심으로 평화로워진다. 참 쉬운 평화라 생각되지만 그것은 "너로 인해 듣는 참 평화". 이 모든 것은 규칙적인 비의 리듬이 가져다준 '착각'일 뿐이라 말해 보지만 이유 따윈 중요치 않다. 이미 너로 인해 평화로운 것이다. 전국이 무수한 빗소리로 여전히 어두운 채이지만 빗소리 열린 작은 창 하나만으로도 세상을 다 가진 듯하다. "너로 인해". /권경아 문학평론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