추석 직전 돌아본 민족적 자존감
일본맥주 1→13위 … 수입액 97% 뚝
유니클로 잇단 폐점·닛산 철수검토
8월 항공여객수 20% 이상 감소
8개 국적항공사 노선 60개 축소
LG디스플레이 소재독립 선언
삼성전자, 불화수소 국산 대체
일본 애초부터 한국제품 구매안해
국교정상화 50년 '무역적자 700조'
▲ 일본 정부의 한국 수출 규제 조치로 일기 시작한 일본제품 불매운동이 이제 안 사기, 안 가기, 대체하기 등 개념행동으로 발전하고 있다. 지난 7월 인천 남동구 구월동 상가밀집지역에서 열린 '일본 경제보복 규탄 불매운동 선언 행사' 모습. 일본산 렉서스 불매운동 퍼포먼스가 열렸다. /인천일보 DB

'깨어 있는 시민지성의 조직화된 힘'. 일본 아베 정부의 7월 초 대한(對韓) 수출규제로 시작된 국내의 일본제품 불매운동이 전 품목, 전 연령층으로 확산되며 지속되고 있다. 초기에는 일본 브랜드 점포 앞에서 벌이는 릴레이 시위 등이 많았다면 시간이 갈수록 안사고, 안가고, 대체하겠다는 개념행동이 대세를 이루고 있다. 우리 국민들은 일본의 대한국 수출규제에 유니클로를 중심으로 일본 제품 불매운동에 나섰고, 일본여행을 자발적으로 취소했다. 소재·부품 국산화와 수입 다변화로 맞서고 있다. 대다수 국민들은 일본정부의 제대로 된 사과 없이는 불매운동을 멈추지 않을 것이라며 이번 기회에 오랫동안 이어져온 한일 간 무역 불균형 및 경제 의존에서 탈피하자는 목소리를 높이고 있다.

▲안 사기

10여년간 수입맥주 부동의 1위였던 일본산 맥주의 실적은 안사기 운동의 끝판왕이다. 한국무역통계진흥원에 따르면 8월 일본 맥주 수입금액은 22만3000달러로 전년 동월(757만달러) 대비 97% 줄었다. 불매운동이 시작된 7월(434만달러) 보다도 94.8% 감소한 수준이다. 최근 10여년간 맥주 수입액에서 부동의 1위를 차지하고 있던 일본 맥주는 8월 국가별 순위로는 13위로 떨어졌다.

편의점 등에서 일본맥주 불매운동이 확산되자 8월부터 일본맥주를 수입맥주 할인 행사에서 제외했다. 중소형 마트 등에서는 일본맥주를 아예 매대에서 뺐고 대형마트에서도 일본맥주 진열을 줄이거나 제외했다.

일본 불매운동의 상징이 된 유니클로는 퇴출운동으로까지 전개되고 있다. 유니클로 월계점이 15일을 마지막으로 영업을 종료한다고 공지했다. 불매운동이 시작된 7월 이후 유니클로의 3번째 폐점 소식이다. 유니클로측은 이미 이슈가 불거진 이전부터 결정된 일이라는 입장이지만, 최근의 급격한 매출 하락도 아예 영향이 없지는 않을 것이란 분석이다.

실제로 금융감독원 자료에 따르면 8개 카드사의 유니클로 매출은 6월 59억4000만원에서 7월 17억8000만원으로 70.1%나 급감했다. 매출단가가 높아지는 가을·겨울 시즌까지 불매운동이 지속된다면 타격은 여름 시즌보다 더 커질 전망이다.

일본 화장품 기업인 DHC의 자회사 DHC-TV의 막말로 촉발된 DHC 패싱은 불매운동을 넘어 퇴출 여론으로 확산됐다. 올리브영·랄라블라·롭스 등 헬스&뷰티(H&B) 스토어는 DHC 제품의 판매를 중단하거나 잘 보이지 않는 곳으로 배치했고 SSG닷컴·쿠팡·티몬·위메프·G마켓·11번가·옥션·멸치쇼핑 등 온라인 마켓도 DHC 제품 판매 중단에 동참했다.

자동차 업계도 예외는 아니다. 한국수입자동차협회의 8월 승용차 등록 자료를 보면 8월 일본계 브랜드 승용차 신규 등록 대수가 1398대로 전년 동기 3247대에 비해 56.9% 감소한 것으로 나타났다.

일본 불매운동이 시작된 지난 7월 경우 일본차 등록대수는 2674대로 전년 동기 대비 17.2% 줄었는데 8월엔 감소폭이 3.3배로 커졌다. 일본 수입차 경우 통상적으로 계약 이후 차량이 수입돼 등록되기까지 한 달가량 걸린다.

이번에 발표된 8월 등록대수는 불매운동 여파가 반영된 결과라고 볼 수 있다. 58대 등록에 그쳐 전년 대비 87.4% 감소한 닛산은 한국시장 철수를 심각하게 고려하고 있다. 여기에 일본제품 수입 의존도가 높은 국내 이륜차 수입업체들이 일본 브랜드 수입과 판매 거부를 선언하고 나서는 등 시간이 갈수록 불매운동의 수위와 범위는 더욱 확대되고 있다.

▲안 가기
일본 여행 보이콧 움직임이 확산되면서 지난 8월 한일 양국을 오간 항공여객 수가 전년보다 20% 이상 감소한 것으로 나타났다. 이 여파로 국적 항공사들이 일제히 일본 노선 공급을 축소한 가운데 최근 일본 항공사도 한국 노선 운항을 중단으로 이어지고 있다. 국토교통부 항공통계에 따르면 8월 국내 항공사들의 일본 노선 여객수는 132만9547명으로 전년 같은 기간 172만1564명에 비해 22.8% 감소했다.

공항별로 보면 제주공항, 무안공항을 제외한 대부분의 지방공항 감소폭이 컸다. 청주공항을 이용한 여객수는 59% 감소했고, 대구공항과 김해공항도 각각 전년 대비 34.8%, 34.4% 줄었다. 27개의 일본행 노선이 운영되고 있는 인천국제공항에서는 일본 노선 여객수 88만3787명으로 20.6% 줄었고 김포공항도 21.8% 감소했다.

일본 공항 기준으로 삿포로(-39.7%), 오키나와(-32.4%), 간사이(-30.9%), 후쿠오카(-29%), 하네다(-10.1%) 등은 감소세가 커졌다. 국적 항공사 8곳은 일본 노선 감축을 결정, 시행 중이다. 현재까지 국적 항공사들이 공급축소를 결정한 일본 노선은 60개가 넘는다. 추석 연휴 항공권 예약률은 전년에 비해 일본 노선 수요가 급격히 줄어든 것으로 나타났다. 위메프가 추석주간(7~15일) 항공권 예약 분석결과, 일본 노선 항공권 예매 비중은 지난해(2018년 9월22~30일) 대비 64% 감소했다.

해외여행객 규모는 계속 늘어나는 추세에서 일본 여행 감소가 두드러져 보인다. 올 1~8월 인천공항 국제선 여객은 4778만6765명으로 전년동기대비 5.7% 증가했다.

여름휴가철인 8월은 해외여행 성수기로 꼽히는 시기이지만, 지난달 해외여행실적에서 국내 대표 종합여행사인 하나투어와 모두투어가 부진한 성적을 기록했다. 그동안 한국인들의 방문 빈도가 높았던 일본은 안가고, 홍콩은 못가면서 급격히 가라앉은 여행심리가 전체 해외여행수요를 끌어 내렸다.

하나투어는 지난 8월 해외여행수요가 지난해 같은 기간 대비 30.5% 감소한 20만6000여명을 기록했다. 모두투어 역시 지난 8월 10만6000명의 해외여행 수요를 기록하면서 지난해 같은 기간 대비 29% 하락했다. 하나투어·모두투어 모두 중국과 동남아지역의 소폭 성장에도 일본으로의 패키지 여행이 70~80% 감소함에 따라 해외여행 수요가 급감한 것으로 나타났다.

▲대체하기

일본의 반도체 소재 등 3대 품목에 대한 수출규제가 만 2개월을 넘겼지만, 아직 이로 인한 관련 산업의 생산 차질은 없는 것으로 나타났다. 일본은 지난 7월 플루오린 폴리이미드, 반도체 웨이퍼에 칠하는 감광액인 포토레지스트, 반도체 세정 공정에 사용하는 고순도 불화수소(에칭가스) 등 3개 품목에 대한 수출제한에 들어갔다. 불확실성을 제거하기 위한 최선의 방법은 국산화고 일본을 제외한 소재 다변화다. 일본에 기형적으로 의존하던 소재·부품을 대체하는 산업구조 개편이 이뤄지고 있는 것이다.

LG디스플레이는 이달 안에 OLED(유기발광다이오드) 패널 생산라인에서 일본산 고순도 불화수소를 국산품으로 완전 대체하기로 방침을 정하고 작업에 돌입했다. 일본 경제보복 이후 3개월 만으로, 국내 대기업의 첫 번째 소재독립 사례다. 삼성디스플레이는 일본산 고순도 불화수소 재고가 어느 정도 남아있지만, 이달 안에 국산화 테스트를 종료한다는 방침이다. 삼성전자 역시 일부 반도체 공정에서 일본산 고순도 불화수소를 국산품으로 대체했다. 삼성전자는 현재 약 3개월 치의 일본산 재고를 확보한 것으로 전해졌다.

이에 발맞춰 정부는 일본의 수출규제에 맞서 지난달 5일 100대 핵심 전략품목을 5년 내 국내에서 공급하는 방안을 담은 '소재·부품·장비 경쟁력 강화대책'을 내놓았다. 이 대책에 따라 정부는 혁신형 연구개발(R&D) 지원, 예비타당성 조사 면제, 인수·합병(M&A) 자금 지원, 수입 다변화 등 가용 가능한 정책 카드를 모두 동원하고 총 45조원에 이르는 예산·금융을 투입한다. 아울러 일본의 수출규제와 경제보복에 대응해 해외 의존도가 높은 부품·소재의 경쟁력 강화를 위한 R&D, 실증 테스트, 사업화, 양산 지원 등 5개 사업에 추가경정예산 1773억원을 투입한다.

▲일본은 애초부터 한국물건 안 샀다. 깨어 있는 시민지성의 조직화된 힘 지속돼야

그렇다면 가까운 이웃 일본은 한국제품을 얼마나 사고 있을까? 2018년도 기준으로 일본내 한국상품 판매근황을 보면 처참하다. 전세계 판매량 6위 현대기아차는 일본에서 단 17대 판매했다. 대부분 대사관이나 상사 주재원이 구입처라 한다. 전세계 점유율 75% 한국D램은 일본에서 19.8%로 2위에 그쳤다.

1위는 대만 60%에 가까운 독과점 형태다. 전세계 판매량 1위로 세계 스마트폰 시장 22%를 점유하는 삼성갤럭시 스마트폰은 5위권에도 들지 못했다. 아이폰이 50% 점유했고 스마트폰을 만드나 싶은 소니, 샤프가 2, 3위, 중국 하웨이가 4위다. 다만 올해 실적은 다소 올랐다 한다.

전세계 TV 판매량 1, 2위로 세계 시장 절반을 점유하고 있는 LG와 삼성. 일본에서 LG 6위, 삼성 10위권 밖이고 역시 세계 1, 2위 냉장고와 에어콘 생산회사 LG, 삼성은 일본에서 10위권밖이다. 사정이 이러니 한·일 국교정상화 이후 근 50여년간 대일 무역·서비스 수지 적자는 700조원에 달한다. 국내 소비자의 일본제품 불매운동 열기는 쉽게 사그라들지 않을 것으로 보인다. 깨어 있는 시민지성의 조직화된 힘이 지속되어야 하는 이유다.

/김칭우 기자 chingw@incheonilbo.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