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동인천지하상가.


추석을 앞둔 요즈음 같은 때는 걸어 다니기 힘들 정도였다. 변변한 백화점 하나 없던 시절 인천사람들은 '신상 하나 득템'하려고 이곳으로 몰려들었다. 특별한 일이 없어도 그냥 '배회'했다. 이곳을 걷다 보면 아는 사람 서너 명은 기본이고 조금 전 만났던 동창생을 두어 번 다시 마주칠 정도였다. 이곳은 7, 80년대 동인천 지하상가다.

1967년 동인천지하도가 개통되었고 72년 새동인천지하상가가 연결됐다. 이후 동인천(74년)·중앙로(77년)·인현(80년)·신포(83년) 지하상가가 조성됐다. 차량의 원활한 소통과 안전한 보행을 위해서 만들어졌다지만 실제로는 민방공 대피용 목적이 더 강했다. 당시 지하상가 위 도로에는 횡단보도가 없었다. 좋든 싫든 지하상가를 통해 큰길을 건널 수밖에 없었다. 도로교통법상 지하상가 200m 이내에는 횡단보도를 설치할 수 없게끔 한 '이상한 법'이 오랫동안 존속했다. 순전히 상가를 위한 것이었는데 그때는 그게 당연한 줄 알았다.
동인천역에서 답동사거리까지 비 한 방울 맞지 않고 다닐 수 있었기 때문에 나도 지하상가로 자주 '마실'을 다녔다. 통로에 내놓은 스피커를 통해 김정호, 폴 모리아 등의 음악을 처음 접하고 단골 레코드점도 생겼다. 기억 속에 멀어진 지하상가가 요즘 점포 전대와 양도·양수 금지 조례안 때문에 들썩이고 있다. 현재 인천의 15개 지하상가에는 3579개의 점포가 있는데 이 문제가 원만히 해결되었으면 하는 바람이다. 이번 추석 명절엔 동인천 지하상가를 배회해야겠다. 고향을 찾은 동창생 녀석이나 까까머리 시절 짝사랑했던 그녀를 우연히 만날지도 모른다. 그 순간 지하상가에 하나 남은 음반 가게에서 폴 모리아의 'Love is Blue'를 배경음악으로 깔아준다면 땡큐일텐데.

/인천시립박물관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