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용택 칼럼] '탈대일본주의<脫大日本主義>'를 읽고 나서
[지용택 칼럼] '탈대일본주의<脫大日本主義>'를 읽고 나서
  • 인천일보
  • 승인 2019.09.1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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새얼문화재단 이사장

 

▲ 저자는 대일본주의 대신에 성숙국가(成熟國家), 다시 말해 경제성장이 아닌 '인간'을 목적으로 한 '성숙전략'으로 국가전략의 재편성을 요구한다.

 

하토야마 유키오(鳩山由紀夫)의 <탈대일본주의(脫大日本主義)>를 읽고 느낀 바가 있어 시간에 쫓기는 이들을 위해 가볍게 몇 마디를 전하려 한다. 저자 하토야마 유키오는 일본의 정치 명문가 출신이다. 증조부 하토야마 가즈오(鳩山和夫)는 일본 중의원 의장을 역임했고, 조부 하토야마 이치로(鳩山一郞)는 전후 일본 정계를 이끌며 자민당의 산파로서 정치사의 한 획을 그은 총리였다. 부친 하토야마 이치로(鳩山威一郞)는 외무상을 맡았고 그 자신도 명문대를 나와 미국 유학을 마치고 돌아와 정치에 입문해 제93대 총리를 지냈다.
저자는 "국가는 수단이지 목적이 아니며 인간은 목적이지 수단이 아니다"라는 정치철학을 조부로부터 이어받아 실행하고 있다. 해방 70주년을 맞던 지난 2015년 8월 서울에서 개최된 '동아시아 평화회의'에 참석한 그는 역사의 현장인 서대문형무소를 찾아 독립운동을 위해 헌신하다가 감옥에 갇히고 옥사했던 분들의 영전에 무릎 꿇고 사죄했다. 이는 한·일 관계에 새로운 희망의 싹을 돋게 한 것이라고 생각한다.


그가 말하는 '탈대일본주의'란 일본을 주도하고 있는 정치인들에게 정치대국이 되려는 욕망과 환상으로부터 깨어나야 하며 일본이 현재 경제대국이긴 하지만 정치대국이 될 만한 힘은 없다는 것이 주된 내용이다. 그의 주장은 일본이 전후 정치대국이었던 적이 한 번도 없었고, 앞으로도 없을 것이라는 것이다. 무엇보다도 일본이 미국의 종속국인데 어떻게 정치대국이 될 수 있는가라는 것이다. 오늘날 일본의 정치체제는 1951년 샌프란시스코 강화조약으로 만들어졌다. "일본은 전쟁과 침략행위를 반성하고 도쿄재판의 결과를 겸허히 수용하며 군국주의를 불식시킴으로써 평화적 민주국가가 될 것을 맹세했기에 국제사회로의 복귀를 인정한다."
이러한 국제 질서에서 일본이 UN상임이사국이 된다는 것은 낙타가 바늘구멍을 통과하는 것만큼 어려운 일이다. UN창설 60주년이었던 2005년 일본이 주도해 독일·인도·브라질(G4) 4개국의 상임이사국 진출을 주요 골자로 하는 안보리개혁결의안을 제출했으나 실패했다. 하토야마 전 총리는 "지금껏 도를 넘어선 미국의 단독 행동에 대해 아무 말도 못하던 나라가 앞으로 국제사회에서 지도적 역할을 하는 대국이 되겠다고 나서면 그 누가 수긍할 수 있겠는가. 항상 미국과 똑같은 행동을 취할 것이라면 굳이 상임이사국이 될 필요가 없지 않을까. 이 같은 견해가 일본을 바라보는 다른 나라들의 진정한 속마음이다"라고 날카롭게 지적한다.

중국어로 'UN'은 연합국이다. 패전 후 일본은 'United Nations'를 국제연합으로 번역하면서 '국제'라는 단어를 삽입했다. 이것은 패전한 날을 '종전기념일'이라고 부르며 전쟁의 패배를 인정하지 않는 것과 무엇이 다를까. 이것은 국민 모두를 기만하는 것이라고 질책한다. 'UN상임이사국' 진입과 함께 일본이 대국화의 지표로 삼은 것이 '원자력'이었다. 핵기술을 보유하는 것이 대국의 조건이라는 생각은 전후 일본 보수정계에 널리 존재해왔다. 일본의 원자력 발전은 핵무기 보유를 목표로 연구되었으며 그 잠재적 능력을 확보하기 위해 추진되었던 것이다. 이는 당연하게도 미국의 경계심을 불러일으켰다. NPT(핵확산금지조약) 체제 속에서 오히려 정치적·경제적 자립을 저해하는 결과를 가져왔다.

전후 역대 자민당 정권이 원자력 발전을 추진했던 숨겨진 의도는 원자력의 평화적 이용이란 명분으로 핵무기 개발의 잠재적 능력을 확보하는데 있었다. 그러나 이는 결론적으로 어리석은 정책이었다. 원자력 발전은 방사성 폐기물을 처분할 방법이 없기 때문이다. 만일 사고가 일어난다면 그 피해는 상상할 수 없을 정도로 막대하다. 그러나 이를 통해 재미를 보는 업계와 관료단체 등 기득권 세력은 원자력발전을 중단하지 말고 계속할 것을 강력히 주장한다. 이것은 커다란 착오이며 도시바(東芝)가 원자력 사업을 중단한 것처럼 장기적으로 지속될 수 없다.

저자는 대일본주의 대신에 성숙국가(成熟國家), 다시 말해 경제성장이 아닌 '인간'을 목적으로 한 '성숙전략'으로 국가전략의 재편성을 요구한다. '아시아 공동체의 도약' 등 구체적인 내용이 많지만, 지면관계상 줄인다. 다만, 우리가 주목해야 할 것은 의회정치의 진실한 의견이다. "국가의 방향성에 관련된 중요한 정책적 판단을 국민들의 선택으로 당선된 정당 정치가들이 자신의 철학과 안목에 따라 책임을 지는 것이 민주정치다. 즉 의회제 민주주의란 관료와 군인들과 같은 전문가보다 선거에서 당선된 아마추어들이 오히려 종합적 판단력이 더 뛰어나다는 암묵적인 전제에 의해 성립된다. 많은 역사적 사실이 이를 입증하고 있다. 특히 관료나 전문가들의 가장 큰 결함은 관료조직의 본능적인 습성인 조직의 이익을 국익과 동일시한다는 것이다. 자신이 소속된 관료기구의 유지 발전이 곧 국익에 부합된다고 생각한다"는 지적은 그 자신이 직접 정치를 경험한 결과에서 온 질책이라고 생각한다. 그러나 아베 정권은 이와 정반대로 처신하고 있다.
대일본주의가 추구하는 정치대국 일본은 사실상 불가능하다. 만약 정치대국이 되고 싶다면 우선 대미 자립을 이루어 주권국가가 되어야 한다. 오키나와의 미군 기지를 축소·철수시키고 지위협정을 개정하고 수도 상공의 주권을 회복해서 '속국' 신분에 만족하지 않는다는 의지를 보여준다면 혹시 국제사회가 일본을 '대국'이 될 만한 자격이 있다고 인정해줄지 모른다. 하지만 대미 종속을 통한 정치대국화를 목표로 하는 동안은 아무도 상대해주지 않을 것이다. 성숙사회, 즉 일본이 미들파워로 나아가야 하는 것은 주체적인 선택일뿐더러 인구통계학적으로 필연적이다.

일본의 인구감소가 초스피드로 진행되고 있다. 2100년에 인구예측은 어림잡아 약 5000만 명이다. 연간 90만 명의 인구가 감소한다. 그 시점에서 고령자 비율은 41.1%가 된다고 말하면서도 일본은 풍부한 국민자원과 온대몬순의 풍요로운 자연 덕분에 다양한 동식물이 있고 깊은 계곡과 아름다운 숲이 있다. 맛있는 물이 있으며 신사(神社)와 절이 있고 수많은 관광자원이 있다고 말하면서 무엇보다 70년에 걸친 평화주의의 성과로 세계적으로 치안수준이 높다고 자랑한다. "2016년 데이터에 따르면 일본에서 연간 총기로 인한 사망자는 6명인데 비해 미국은 3만3599명이다. 미국이 '일본 수준의 치안'을 달성하기 위해서는 수십 년에 걸쳐 천문학적인 국가예산을 투입해야 한다"라는 말을 빼놓지 않는다. 마음 속에 불타는 애국심이 조용히 빛나고 있다는 것을 곳곳에서 느낄 수 있다. 이 책을 정독하는 사람이 많았으면 좋겠다. 우리의 참된 위치를 알기 위해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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