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기환 논설위원

10여 년 전 일이다. 추석을 앞둔 무렵 선배 한 분이 소금 2포대를 차 트렁크에 실어줬다. "군자염전에서 나온 천일염"이라고 했다. 낑낑대며 끌고 와서는 굴러다니는 빈 술병들을 받침대 삼아 세워두었다. 한 5년이나 흘렀을까. 포대를 풀어 맛을 보니 거짓말 좀 보태 '달콤한 소금'이었다. '아, 이게 간수 빠진 천일염이구나' 했다. 지난 봄 다시 2포대를 주문해 잠을 재우고 있다.  ▶소금은 크게 천일염과 정제염으로 나뉜다. 천일염은 바닷물을 끌어와 바람과 햇빛으로 증발시켜 얻는다. 정제염은 바닷물을 전기분해해 이온수지막으로 불순물과 중금속 등을 제거해 얻는다. 순도 높은 염화나트륨(NaCl) 결정체다. 천일염에는 칼슘, 마그네슘, 아연, 칼륨 등의 미네랄 성분과 수분이 많다. 채소나 생선 절임에 좋다. 천일염으로 김치나 간장, 된장을 담그면 발효 과정에서 천일염의 유독 성분이 사라진다고 한다. 정제염은 값이 싸고 대량생산이 가능하다. 그러나 불순물을 제거하면서 미네랄 성분도 같이 걸러져 오로지 짠 맛만 남게 된다. 한때 중국산 수입 소금으로 김장을 했다가 한해 김장 농사를 망쳐버렸다는 실패담이 떠돌았다. 황금, 소금, 지금 중에 인생에는 지금이 가장 값지다는 말이 있다. 그러나 우리 몸에는 소금이 가장 값질 것이다.  ▶천일염은 본시 인천에서 태어났다. 1907년 인천 주안염전이 처음으로 '천일' 방식의 소금을 생산했다. 1933년 남동·소래염전까지 가세해 인천산 천일염이 전국 생산량의 절반에 달했다. 1950년대 이후에는 옹진군과 영종·용유·강화도 일대에도 천일염전이 번성했다. 특히 백령도 일대에서 생산되는 천일염은 유황성분이 함유돼 최상품 대접을 받았다. 그러나 그 백령염전마저 2년 전부터는 생산을 중단한 채 메말라 있다고 한다.  ▶지금은 전남 신안군이 천일염의 본고장이다. 국내 생산량의 75%를 점한다. 1004개의 섬을 '천사 섬의 고장'으로 홍보하는 신안군이다. 청정 해수와 미네랄의 보고인 갯벌, 풍부한 일조량 등이 좋은 천일염을 만들어낸다. 그런데 이 신안 천일염도 그리 오래 가지 않을 것 같다고 한다. 2800㏊에 달하는 신안군 염전의 35%가 이미 태양광 업자들의 수중에 넘어갔다고 한다. 천일염 생산은 일은 고되지만 소금 시세는 널 뛰듯 해 수익이 크지 않다고 한다. 염전주 입장에서는 그냥 태양광 업자에게 넘기는 게 나은 것이다. 이제는 눈길이 닿는 산비탈마다 태양광 패널이다. 그 풍광 좋던 저수지들도 값싸게 번쩍이는 패널로 볼품없게 망가졌다. 그것도 부족해 이제는 우리 식탁까지 넘보고 있다. 탈원전 바람이 머지않아 중국산 소금으로 김치나 된장을 담게 할까 봐 걱정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