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만화와 결혼한 행운아 … 소통매개 되고파"

올 취임하자마자 '부천국제만화축제' 치러
"그리고 만들고 즐기는 모두 행복하게 노력"



"50여년 만화와 함께 살아오면서 누구나 아는 국민만화가가 되지는 못했지만, 만화와 결혼한 행운아라고 생각하고 살아왔어요. 사랑과 겸손의 자세로 진흥원과 만화계의 소통 매개가 되고 싶어요."

만화와 함께 한 50년 인생의 만화가 이해경(63·여·사진) 한국만화영상진흥원 이사장의 다짐이다.

부산이 고향인 이 이사장은 평소 만화를 좋아하던 아버지와 교토여상을 졸업한 어머니의 보살핌 속에서 13살부터 본격적으로 만화를 그리기 시작했다고 한다. 이듬해에는 어머니가 그를 업고 부산의 한 신문사에 데려가 작품을 보여주고 즉석에서 인정을 받기도 할 정도였다.

"저는 3살 때 소아마비를 앓은 장애인입니다. 그래서 어머니께서 업고 다니셨죠. 2013년 돌아가실 때까지 늘 같이 있었습니다."

이 이사장의 만화 세계는 주로 일상을 소재로 한 여성성인 만화였다. 그는 1974년 잡지 '새소년'에 '현아의 외출'이라는 작품으로 데뷔했다. 그 뒤 만화 왕국, 소년동아일보, 어린이 동산, 계간 만화 등에 연재했고 일본의 잡지 '집영사'에 외국인 최초로 연재하는 기록을 세우기도 했다.

그는 괜찮은 만화가가 되려고 사회운동도 하고 미술학원, 커피숍도 운영하고 대학 강단에도 서보는 다양한 경험을 했다.

"운전면허를 따려고 국립재활병원에 한 달간 입원해 실습 교육을 받았었죠. 거기 있으면서 매일 보던 후천적 척수 장애인 친구들과 늘 대화를 했습니다. 처음엔 맘을 열지 않다가 나중엔 '언니, 누나' 부르며 속내를 털어놓더군요."

그때 그 친구들의 얘기에서 착안해 계간만화 잡지에 연재한 작품이 '오늘의 우리만화상'을 수상한 '겨드랑이가 가렵다'다.

이 이사장이 진흥원과 인연을 맺은 것은 어머니가 돌아가신 2013년 혼자가 되면서 진흥원으로 입주하면서부터였다. 입주 후에는 만화가 선후배들의 소통창구를 자처해 진흥원 입주작가대표를 맡아오다 올해 7월 이사장이 됐다.

그는 취임하자마자 부천국제만화축제(8월14~19일)를 치렀다.

"취임하고 새로운 구상을 할 겨를도 없이 축제를 치렀죠. 물론 조관제 위원장과 신종철 원장 등 별도 운영위원회가 잘 준비해줬고, 저도 이사장으로서 관람객들의 안전을 생각하며 재미있게 즐기도록 노력했어요. 11만명이 다녀가는 대성황 속에 치러져 감사할 뿐입니다."

이해경 이사장의 좌우명은 '절대 포기하지 않는다. 오늘을 늘 감사하며 열심히 살자'다.

"한국만화영상진흥원은 국내 유일의 만화문화산업을 진흥시키는 곳입니다. 그리는 사람(만화가), 만드는 사람(출판사, 웹툰 플랫폼 등 기업), 즐기는 사람(독자) 모두를 행복하게 만들도록 더 노력할 것입니다. 제 좌우명처럼 어떤 일이든 절대 포기하지 않고 열심히 할 것입니다."

/부천=김진원 기자 kjw@incheonilbo.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