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 인천을 읽다] 아침 꽃을 저녁에 줍다
[시, 인천을 읽다] 아침 꽃을 저녁에 줍다
  • 인천일보
  • 승인 2019.09.0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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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은규  

아침 꽃을 저녁에 주울 수 있을까

왜 향기는 한순간 절정인지
아침에 떨어진 꽃잎을 저녁에 함께 줍는 일
그러나 우리는 같은 시간에 머물지 않고

떠도는 발자국 하나
지구의 원점, 그리니치 천문대를 지날 때
흩어진 별들의 고개 기울어지다

알고 있니 천문대의 자오선을 경계로 하루쯤 시차가 난다는 걸.
그도 괜찮지만 착란은 날짜변경선이 지나는 나라의 일,
언제나 거짓말 같은 새벽과 짙은 농담의 밤이 찾아오는 곳

감은 눈동자 위로 반짝이는 열
이별은 이 별에서 헤어지는 중입니다
새의 깃도 바람에 해어지는 중입니다

기억하자 날짜변경선을 동쪽에서 서쪽으로 넘으면 하루 늦게,
반대의 경우 하루가 빨라진다는 걸,
착란의 시간과 변하지 않을 운명에 대한 예감은 잠시 접어두기

문득 망설이던 긴 꼬리별
역일曆日의 선을 그으며 떨어지는 순간

때를 달리한 연인은
아침 꽃을 저녁에 주울 수 없고
우리는 너와 나로 파자破字 되어 단출할 뿐이다

이제 잊는 것으로 기다릴까
향기로운 새의 부리가 전해줄 꽃의 절정
한 잎은 이쪽으로
한 잎은 저쪽으로



▶시간이란 모든 사태 속에서 인지되는 사건들의 연속 안에서 있는 것이 시간이다. 이 시간의 연속성이 과거와 현재와 미래를 연결한다. 무수히 연결되는 어떤 한 점(즉 사태)의 순간, 그 조각의 선분 위에서 우리는 만나고 헤어진다. '아'라고 말하는 순간 '아'라는 그 말은 과거가 되고 아직 오지 않은 일들과 이미 이루어진 일들 사이에서 우리는 산다. "아침 꽃을 저녁에 주울 수 없고/우리는 너와 나로 파자破字되어 단출할 뿐이다" 맞는 말이다. 무수히 일어나는 만남과 헤어짐들, "이제 잊는 것으로 기다린다"는 시인의 말이 가슴에 남는다. 아침 꽃을 저녁에 줍는 일. 인연. 시간. 잊는 것으로 기억되는 존재들이다.
/주병율 시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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