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문일 논설위원

인천은 바닷길과 하늘길, 육로 등을 아우르는 사통팔달(四通八達)의 도시다. 인천항과 인천국제공항에선 지금도 수많은 여객과 화물을 실어나른다. 1883년 무렵 비록 일제가 강제로 개항했어도, 인천항은 이후 수도 서울의 관문으로서 역할을 톡톡히 했다. 일제시대엔 갖가지 신문물이 인천항을 통해 들어오면서 인천은 '개화의 꽃'을 활짝 폈다. 오히려 당시 경성(京城)보다도 상당 부분 화려한 면모를 자랑했다고 한다.
영종도를 거의 통째로 건설하면서 2001년 3월 문을 연 인천공항 역시 우리는 물론 세계적으로도 유명한 곳으로 그 이름을 날리고 있다. 이젠 세계로 나가려는 한국인, 한국으로 들어오려는 세계인들에게 명실상부한 문(門)으로 인식된다. 육로도 말할 나위 없다. 우리나라 최초의 철도인 경인선(1899년 개통) 전철을 비롯해 각종 도로는 널리 전국 곳곳을 잇고 있다. 그래서인지 인천시의 모토도 'All ways Incheon'이다. 모든 길은 인천으로 통한다는 뜻이다.

이들 길 가운데 바닷길을 개척한 곳으로 능허대(凌虛臺)가 꼽힌다. 삼국시대 백제 때 나루터가 있던 곳이다. 오랫동안 인천일보 칼럼 제목 '능허대'는 독자들의 많은 공감을 불러일으키기도 했다. 연수구 옥련동 능허대공원 근처에 가면 인천시기념물 제8호 '능허대 터'가 나온다. 여기엔 백제가 378년(근초고왕 27)부터 중국을 오갈 때 삼았던 나루터가 있었다. 고구려에 육로가 막혀 어려움을 겪던 백제가 중국과 교역을 하면서 주로 이용했다. 백제 사신과 상인들은 능허대에서 바람이 불어오기를 기다렸다가 때를 맞춰 배를 탔다. 이렇게 시작한 교역 활동은 고려시대까지 이어져 거란·여진·일본·아라비아 상인들도 인천을 왕래했다고 전해진다. 유럽 각국에 한국이란 이름이 꼬레아(Corea)로 알려진 때도 바로 이 시기다. 말하자면 능허대는 인천 바닷길의 원조(元祖)이자 인천항의 전신(前身)인 셈이라고나 할까. 이렇듯 세계 교통 중심에 서 있는 인천은 바야흐로 '환황해권 경제벨트'의 핵심 도시를 지향한다.

연수문화원이 향토문화탐방 프로그램인 '백제사신길 도보 투어'를 꾸준히 벌여 눈길을 끈다. 그 길을 직접 걸어보며 백제의 해양 활동은 어떠했는지 알기 위해 마련됐다. 하반기 탐방은 9월17·21일, 10월15·19일, 11월12·16일로 참가자를 모집한다. 투어의 핵심은 뭐니뭐니 해도 "능허대를 알자"는 것이다. 차제에 연수구뿐만 아니라 인천시 차원에서 '인천 바닷길 열림의 의미' 등을 찾으며 All ways Incheon에 걸맞은 프로그램 계획을 세웠으면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