술 너무 사랑한 나머지, 세상에 없던 맛을 빚다
▲ 이성원 장인은 "좋은 술은 순리를 거스르지 않는 술"이라며 연잎막걸리 맛의 비결을 소개했다. 연꽃이 한창인 8월의 끝자락, 마재마을의 청정 연밭을 배경으로 이성원 장인이 미소짓고 있다. /박혜림 기자 hama@incheonilbo.com

 

 

 

애주가 급기야 일 그만두고
장인 찾아다니며 11년 연구
마을 유명한 '연' 응용 개발
노화방지 효능에 맛도 잡아
첫 선보인 지역축제서 대박

'남들은 막걸리를 술이라지만 내게는 밥이나 마찬가지다.'(천상병詩 막걸리 중에서) 천상병 시인은 막걸리를 밥과 같다 했다. 영양분이 많은 막걸리 한 사발에 배가 불러지는 것은 물론이요, 인생 최고의 즐거움이 막걸리를 들이켤 때라 했다. 여기 천상병 시인 못지않게 막걸리의 매력에 푹 빠진 이가 있다. 막걸리가 너무 좋은 나머지 직접 술을 빚기 시작한 이성원(60) 장인을 26일 만났다.

#세상에 같은 막걸리는 없다

'마구 걸러 낸 술', 청주를 떠내고 남은 술지게미를 다시 체에 그대로 걸러낸 술을 '막걸리'라 부른다. 맛 좋고 저렴한 가격 덕에 온 국민의 사랑을 받는 '국민 술'에 대표 주자다.
우리 민족이 막걸리를 먹기 시작한 건 1800년대로 추정하고 있다. 1837년 주조술이 담긴 고문헌 '양주방'에서 혼돈주(混沌酒)라는 이름으로 처음 등장했다.

막걸리는 빚는 방식이나 첨가 재료에 따라 각기 다른 맛이 난다. '세상에 다 같은 막걸리는 없다'는 항간의 우스갯소리도 전혀 틀린 말은 아니다.

"술 만드는 사람들끼리 농담 삼아 오늘 빚은 술은 오늘 한 번밖에 못 먹어본다는 대화를 나누곤 하죠. 그만큼 온도나 주조 기간에 따라 맛이 제각각 달라지기 때문에 만드는 과정이 상당히 까다롭습니다. 마트에서 단돈 1000원이면 먹을 수 있는 술이지만 우습게 볼 술이 아닙니다."

이성원 장인은 사실 동네에 소문난 애주가다. 막걸리뿐 아니라 맥주부터 소주, 양주 술이라면 가리지 않고 즐겨 마셨다. 급기야 직접 술을 빚어 보겠다며 시작한 전통주 연구는 올해로 11년째가 됐다.

"술을 워낙 좋아합니다. 12년 전 일을 그만두면서 국내에 다양한 주류, 음식 체험 행사를 찾아다니게 됐죠. 한번은 궁중요리 행사에 갔다가 시음하게 된 막걸리 맛에 반해 이 좋은 술을 나만 먹을 것이 아니라 주변 사람들에게도 맛보게 해주고 싶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내친김에 술을 직접 빚어보기로 하고 이때부터 우리 전통주에 대한 공부에 매진하게 됐죠."

#애주가에서 주조전문가로

수년 전 자영업을 하던 그는 본업을 접고 고향인 남양주 마재마을로 귀향했다. 이후 주조술에 관심을 두게 되면서 전국 내로라하는 전통주 명인을 찾아다녔다. 그러던 중 전통주 제조의 권위자로 알려진 한국전통연구소 박록담 소장과 연이 닿으면서 그의 삶은 180도 달라졌다.

"전국에 전통주 명인들을 찾아다니면서 술을 만드는 과정을 배웠습니다. 가장 결정적인 계기가 된 것도 박록담 소장을 만나면서부터였습니다. 술에 대해 마실 줄만 알았지 아무것도 모르는 제게 많은 도움을 준 분이지요."

할 수 있다는 자신감이 있었지만 본격적인 홀로서기가 시작되면서 문제가 발생했다. 연거푸 실패한 주조 과정 탓에 재료를 버리는 일이 허다했다. 하루 반나절, 오직 술을 만드는 일에만 매달렸다.

"버린 쌀만해도 족히 다섯 가마니는 될 겁니다. 망친 술이 아까워 질릴 때까지 먹기도 하고 발효 시간을 놓쳐 식초가 돼버린 막걸리를 이웃들에게 나눠주기도 했지요."

몸소 부딪혀 체득한 경험들은 애주가를 주조 전문가로 성장하게 했다. 술을 연구하던 어느 날, 우연히 마재마을 일대로 조성된 연잎 밭이 이 장인의 눈에 들어왔다. 문득 연잎을 주재료로 만드는 연엽주가 그의 머릿속을 스쳤다.

"예전 고문헌에도 연으로 만든 술에 대해 소개하고 있죠. 오래전 남양주시 조안면 일대에 연밭을 조성하기 시작하면서 이곳은 연잎마을로 이름을 알리게 됐습니다. 주변에 쉽게 구할 수 있었던 연잎을 가지고 막걸리를 빚어 봐야겠다는 단순한 생각이 연잎 막걸리를 만들게 된 계기가 됐습니다."

#마재마을 연잎막걸리

이 장인의 연잎막걸리는 남양주 대표 축제인 '슬로 푸드국제대회'에서 첫 선을 보여 대히트를 쳤다.
"이스트 같은 화학 재료를 쓰지 않고 누룩을 사용해 제례 전통방식 그대로를 재현해 술을 빚었습니다. 지역 축제에 소량을 들고나가 판매했더니 준비해 온 막걸리는 금세 동이 나버렸죠. 며칠 간 계속된 축제에서 연잎막걸리 맛을 잊지 못한 손님들이 연이어 축제를 방문했습니다."

이 장인이 만든 연잎막걸리는 신경안정과 노화방지에 탁월한 연의 효능이 더해지면서 까다로운 소비자들의 입맛을 사로잡았다. 특히 화공비료가 쓰이지 않은 청정지역에서 길러진 연을 재료로 빚어낸 연잎막걸리는 마재마을을 알리는 요소가 됐다.

"조안면 마재마을 일대는 상수원보호구역으로 지정돼 있습니다. 화학비료를 전혀 사용하지 않기 때문에 여기서 나는 작물들은 친환경 재료들이라 할 수 있죠. 공장이 들어올 수 없는 지역 특성상 소량의 막걸리만을 만들어 지역축제에 소개하는 정도였기에 연잎막걸리를 맛볼 수 있는 유일한 방법은 남양주의 지역 축제뿐이었습니다."

최근 이 장인은 연잎막걸리의 제조를 잠정 중단하고 더 좋은 품질의 제품을 개발하기 위해 세계 각지를 돌며 주조술에 대한 연구를 꾀하고 있다.

"우수하고 맛 좋은 막걸리를 개발하기 위해 계속 공부 중입니다. 선진국의 기술력을 답습해 막걸리의 우수성을 널리 알리고 홀대받는 우리술의 가치를 보다 높이는데 역할을 다하고 싶습니다."

/박혜림 기자 hama@incheonilbo.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