읽다 보면 되살아난다, 헌책방의 존재 의미

 

▲ 강은교 시인이 게스트로 참여한 2012년 3월 제51회 배다리 시 낭송회의 소책자 표지.


강은교 시인이 2012년 3월에 배다리 시낭송 51회에 게스트로 참석하신 적이 있다.
2014년 5월28일자 국민일보에는 강은교 시인이 '헌책방'이라는 작은 칼럼을 썼다. 그 글속에서 '아벨 서점'이라는 시를 쓰시게 된 동기를 말씀하신다.

"'아벨서점'은 따듯한 오미자차가 아주 인상적인 헌책방이다. 그곳 다락방에선 매달 문학모임이 열리곤 하는데, 언젠가 나는 그곳에 게스트로 초대된 적이 있었다. 그때의 감동은 '아벨서점'이라는 시를 쓰게 했다. 거의 5분 만에 썼으므로 과연 시가 제대로 되었는지 걱정이 될 지경이었다. 그런데 나중에 읽으니 그 시의 의미는 나의 가슴 깊은 곳에 숨어있던 헌책방이 아벨서점으로 인해 되살아난 것이었다"고 말하며 시인의 어린 날을 회상한다.

"어린 시절 살던 나의 동네에는 헌책방이 있었고, 나는 거의 매일 그곳을 들러 헌책을 빌리곤 했었다. 그 시절 그 책들에 들어있던 '광활한' 들판같은 것에 나는 거의 정신을 차릴 수 없었던 기억이 난다. 나의 문학은 그때 읽은 책들의 카피가 아닌가 생각 될 때도 있다. 누구보다도 훌륭한 스승이었던 헌책들 … "이라며 그 시절 동네 헌책방의 존재 의미를 무한의 우주 입문소로 아낌없이 예찬한다.

'아벨 서점/ 강은교'
아마도 너는 거기서/ 희푸른 나무 간판에 생이라는 글자가 발돋움하고 서서 저녁 별빛을 만지는 것을 볼 것이다/ 글자 뒤에선 비탈이 빼꼼히 입술을 내밀 것이다/ 혹은 꿈길이 금빛 머리칼을 팔락일 것이다/ 잘 안 열리는 문을 두 손으로 밀고 들어오면/ 헌 책장을 밟고 선 문턱이 세상의 온갖 무게를 받아 안고 낑낑거리고 있는 것을 볼 것이다/ 구불거리는 계단으로 다가서면/ 눈시울들이 너를 향해 쭈삣쭈삣 내려올 것이다/ 그 꼭대기에 겁에 질린 듯 새하얘진 얼굴로 밑을 내려다보고 있는 철쭉 한 그루/ 아마도 너는 그때/ 사람들이 수첩처럼 조심히 벼랑들을 꺼내 탁자에 얹는 것을 볼 것이다/ 꽃잎 밑 나 닮은 의자 위엔 연분홍 그늘들이 웅성거리며 내려앉을 것이고/ 아 거길 아는가/ 꿈길이 벼랑의 속마음에 깃을 대고/ 가슴이 진자줏빛 오미자처럼 끓고 있는 그곳을/ 남몰래 눈시울 닦는 너울대는 옷소매들, 돛들을, 떠있는 배들을/ 배들은 오늘도 어딘가 아름다운 항구로 떠날 것이다.

'헌책방은 수없는 영혼들 교류의 손길로 제빛이 숙성된 책들의 방!'
국민시인 강은교 시인은 '헌책방'을 시인의 모태를 타고 최고의 기록으로 살아있는 사람의 가슴으로 흘러드는 불멸의 언어들로 4차 혁명의 세계에 청춘(생기의 불꽃)의 방으로 여민다.

시인은 이어서 어린 날, 책방에서 하도 열심히 책을 빌려가고 하니까 아마도 기특하게 본 책방 주인이 새 책으로 <릴케 시집>을 선물했는데 그때로선 처음 보는 이름이었다며 새로운 언어로 인도한 헌책방 주인의 면목도 고마워하며 소개한다.

그러면서 강은교 선생은 오늘의 시대에 화두를 던진다.
"우리는 왜 언제나 새것으로만 살려고 하는가, 헌것에 깃든 정신의 곰삭은 때를 왜 못 견디는가! 우리네 역사라는 것이 헌것임을 잘 알면서, 전통이라는 것이 헌것임을 잘 알면서, 우리의 삶이라는 것이 실은 '수만이' 이미 살아온 헌것임을 잘 알면서, 오늘 우리는 왜 우리 아버지 어머니의 구식을 사랑하지 않는가, 그 구식들을 사랑스런 새로운 것으로 만들어야 할 것이 아닌가, 그럴 때 새로운 것에의 미숙함에서 빚어지는 온갖 이 사회의 사고들, 천박함들도 사라지지 않을까"라며 시인은 칼럼을 맺는다.

강은교 시인의 칼럼을 소개한 이유는 시인이 대상을 받은 작품의 동기 부여가 배다리 헌책방 거리에서 일어났다는 사실이다. 오랜 곳에서 혼과 몸의 노력으로 역사의 가슴을 열어 힘으로 쓸 수 있는 방법의 서사다.

/아벨서점 대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