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 인천을 읽다] 가을나무
[시, 인천을 읽다] 가을나무
  • 인천일보
  • 승인 2019.09.0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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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정영

가슴에 가득 넘치는 물기를
푸른 햇살로 닦아내고
이파리보다 더 진한 자세로
하늘 향해 설 수 있다는 것은
뿌리가 튼튼하기 때문인가
플라타너스의 흰 속살을 닮고 싶다
겨우내 잘린 팔로 차디찬 바람 끌고 다니다
지난 계절의 창틀에서 붉게 솟구치는
능금빛 햇살 한 점으로
자신의 그림자를 드러내는
넉넉함을 배우고 싶다
뿌리에서 땅살로 흩어지는 고요한 숨결
자신을 버리는 것은
충분히 멈추었다가 천천히 자신의
살 밑으로 떨어지는 것
자신을 버리지 못한 것들의 입술이 날마다 울음을 터뜨린다
벼이삭이 고통 없이 베어지는 것은
뜨겁게 산 때문인가

가을의 싱그러운 오곡백과는 그들의 빛나는 노정에 관계없이 대부분 인간을 위한 제단 위에 바쳐진다. 오랫동안 바람과 햇살과 새소리를 머금고 빚어낸 보석들을 아낌없이 내어주는 가을 나무는 성자의 마음을 닮았다. 그들의 넉넉한 인내심과 무소유 정신은 누군가의 허기진 한 끼 식사를 위해 탐욕 없이 제 것을 내어놓는다.

이즈음 차창 밖으로 보이는 들판의 벼이삭들은 푸릇푸릇한 잎들을 밀어 올리며 뜨거운 햇살을 온몸으로 받아들이고 있다. 그들은 무엇을 위해 지금의 고통을 참는 것일까. 설령 벼가 익어 알곡이 가득 찼더라도 고통 없이 베어지는 것이 가능하기나 한 것일까. 인간사에서 제 것이라면 조그만 것 하나라도 내어놓는 것이 참으로 어려운 일임을 우리는 안다. 더 차지하기 위해 다투고 시기하고 속이고 우는 것이 일상사인 세상에서 시 '가을 나무'는 우리에게 일말의 성찰을 전해준다.

문정영 시인은 존재의 탐욕의식을, '자신을 버리지 못한 것들의 입술이 날마다 울음을 터뜨린다'고 노래했다. 우리 인간사에서도 과욕으로 인해 처참하게 몰락한 예는 비일비재하다. '돌아갈 때가 언제인가를 아는 이의 뒷모습은 얼마나 아름다운가'라는 '낙화'의 시구를 굳이 되새기지 않더라도, 버릴 때 버릴 줄 아는 지혜는 우리 삶에 진정 필요한 가치일 것이다. 결국 '돌아갈 때'란 '가진 것을 아낌없이 남들에게 내어주는 때'로 해석하는 것이 마땅하다.

제 몸이 베어질 때 고통 없는 것이 어디 있으랴만, 벼 이삭은 여름을 견뎌온 뜨거움으로, 또 익을수록 고개를 숙이는 겸허함으로 제 몸이 베어지는 고통을 참는다.

/권영준 시인·인천부개고 국어교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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