답은 늘 현장에 … 그래서 직접 지게차 끌고 생필품 배달갑니다
▲ 이윤성 인천사회복지협의회 회장이 인천광역시 기부식품 등 지원센터에서 지게차로 작업을 하고 있다. /양진수 기자 photosmith@incheonilbo.com

 


출마 때부터 낙하산 비판 쏟아져
사무실 아닌 현장에서 '참봉사'
기자·앵커 등 다방면 경력 쌓아
"시민에게 보답할 길은 봉사뿐"
임기 끝나도 복지사각지대 돕기로




4선 국회의원에서 사회복지기관의 수장으로 변신한 이윤성 회장은 그동안 언론과 방송을 통해 보던 이미지와 사뭇 달랐다.

앵커 시절 9시 뉴스를 통해 만났던 그의 모습 역시 정장과 넥타이 차림이 대부분이었다. 이를 벗어던지고 청바지와 티셔츠를 입은 채 나타난 이 회장은 사무실에 앉아 일하는 회장 역할에 충실할 것이라는 예상을 깼다. 목덜미에 수건을 두른 채 지게차를 직접 운전하며 어려운 이웃들에게 전달할 식품과 생필품을 옮기고 있는 장면은 낯설면서도 친근하게 다가왔다.

그는 과거 무료 급식소를 찾아가 배식 봉사를 한다는 명목으로 의정 보고서용 '사진'만 찍고 떠났던 지난날을 회상하며 이제는 직접 현장에서 '참봉사'를 펼치는 게 오늘의 이윤성이라고 말했다.

▲시민들을 향한 보답

지난 인천시사회복지협의회장 선거를 앞두고 지역사회가 들썩였다. 국회의원 출신의 이윤성 현 회장이 선거에 도전한다는 소식이 알려지면서다. 사회복지에 전문적인 지식이 없는 무관한 인물이 출마한다는 사실에 '낙하산' 인사라는 곱지 않은 시선이 쏟아졌다.

정치계를 떠난 뒤 이 회장은 앞날에 대한 고민이 컸다. 많은 선배들을 만나 이야기를 나누고 조언을 들었다. 답은 하나였다. 4선 국회의원이라는 타이틀, 그동안 쌓아온 경험과 경력은 모두 시민들의 지지 덕분이었다. 이제는 보답할 때라고 판단했다.

"시민들에게 보답하는 길, 오랜 시간 누려온 것들을 환원하는 방법은 봉사뿐이었어요. 인천지역에서 봉사를 할 수 있는 가장 큰 현장은 인천시사회복지협의회라는 생각이 들었죠. 그래서 회장 선거에 출마하기로 결심했습니다."

하지만 시작부터 난관이었다. 회장 선거에 도전하는 과정은 쉽지 않았다. 총회를 통해 투표를 진행하는 협의회 절차상 회원들의 성원이 이뤄져야 선거 자체가 가능하다. 두 차례나 성원이 되지 않았고 결국 세 번째에 가서야 선거가 진행됐다.

"성원이 두 번이나 이뤄지지 않다 보니 주변에서는 그냥 포기하라는 조언도 있었어요. 그래도 오기로 버텼습니다. 시민들을 위한 보답이라는 일념 하나로 이겨낸 것이죠. 낙하산이라는 비판에 치우치기보다는 이게 아니면 안 된다라는 생각만 했어요."

▲참봉사의 의미

국회의원 시절 이 회장이 봉사할 수 있는 기회는 많았다. 실제 봉사활동 현장에 가서 어려운 이웃들을 만나 힘든 사정과 이야기를 듣기도 했다. 사회복지협의회에 들어오면서 예전에 했던 봉사는 말에 그칠 뿐이었다는 것을 깨달았다.

"말만 하던 봉사, 참봉사는 이런 것이구나 하고 현장에서 비로소 느꼈어요. 서로의 진심이 통할 때만 사랑이 전해진다는 것도 몸소 체험했죠. 회장이 직접 나서야 현장도 변한다는 생각으로 바쁘게 움직였어요."

수년 전 벌어진 서울 송파 세 모녀 사건은 사회에 큰 충격을 줬다. 시간이 많이 지났지만 여전히 유사한 사건들은 끊이지 않고 있다. 지역 곳곳에 사각지대에 처해 복지제도나 지원받을 수 있는 방법들을 모르는 이들이 여전히 존재한다.

"세 모녀 사건을 계기로 법이 강화됐다고는 하지만 여전히 위기 상황에 놓인 이웃들을 발굴하는 데 한계가 있죠. 협의회 회장으로 취임하면서 복지 사각지대를 책임지자는 캐치프레이즈를 정했습니다. "

▲다방면에서 쌓은 화려한 경력

기자에서 앵커, 국회의원, 그리고 사회복지협의회 회장까지 이 회장은 다방면에서 활동을 펼쳐오고 있다. 분야는 각기 다르지만 목표는 같았다. 답이 있는 현장에 늘 머물고 싶은 마음 하나로 지금까지 걸어왔다.

"학창시절 국어 선생님이 글쓰기에 소질이 있다며 문예반에 들어갈 것을 권하셨어요. 문예반 활동을 하면서 시조, 단편 분야에서 대회 수상도 많이 했죠. 군 복무를 할 때 기자에 대한 꿈을 키웠고 제대 후 KBS 공채에 합격했어요. 지금 생각해보면 노력도 컸지만 운이 따라줬던 것 같아요."

정치부 기자와 도쿄 특파원까지 지낸 그는 늘 객관적 보도와 사실 전달에 충실하려고 애썼지만 그 자체로는 만족할 수 없었다. 현장의 중심에 서자는 욕심으로 정치에 뛰어들었다.

"문제의 변화에 앞장서고 싶었어요. 정치에 발을 들인 결정적 계기죠. 지금도 같은 이유로 이 자리에 있게 됐어요. 제 인생은 늘 현장에 답이 있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닌 것 같습니다."

▲봉사에는 임기가 없다

이 회장은 국회의원 시절 한 민원인과의 만남이 10여년이 지난 지금까지 기억에 남는다고 밝혔다. 오직 한 가지 희망을 걸고 본인을 찾아왔다는 민원인에게 해줄 수 있는 일이 없었다. 어렵다는 답변에 이제는 어떤 희망을 품어야 하느냐고 반문하던 민원인의 모습이 생생하다는 그다.

"그때는 정말 도와줄 수 있는 게 없어서 어렵다고 답했는데 되돌아보니 최선을 다하겠다며 공감한다고 할 걸 후회가 들었어요. 민원인은 절실한 마음으로 저를 찾아왔을 텐데 말이죠. 그 뒤로 안 된다, 어렵다는 이야기는 되도록 안 하려고 해요. 최대한 진정성을 갖고 방법을 찾으려고 합니다."

이 경험은 그가 협의회에 들어와 3년의 회장 임기를 완성해 나가는데 길라잡이가 됐다. 국회의원과 협의회 회장 모두 마찬가지로 매일매일 승부를 건다는 심정으로 임하고 있다는 그는 직함에 관계없이 여생을 봉사로 채워나가고 싶다는 계획이다.

"협의회에 들어와 사회복지 현장을 두루 경험하면서 봉사에는 임기가 없다는 것을 알게 됐어요. 자리의 임기를 떠나 힘이 닿는 데까지 지역사회에서 봉사하며 살아가는 것이 큰 바람이자 소망입니다."

/김신영 기자 happy1812@incheonilbo.com



▲이윤성 인천시사회복지협의회장 이력

- 15·16·17·18대 국회의원(4선)
- 제18대 국회 부의장(전반기)
- 제16대 국회 개혁특별위원장
- 제17대 국회 산업자원위원장
- 인천아시아경기대회조직위원회 고문(전)
- 방송인(KBS 뉴스앵커(전)
- 관훈클럽 회원(현)
- 인천복지재단 이사(현)
- 미래포럼21 회장(현)
- 가천대학교 석좌교수(현)
- 인천광역시사회복지협의회 회장(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