개항도시 인천에 현존하고 있는 건물 중 아직도 원형이 제대로 보존되어 있고 시민들이 찾고 이용하는 곳은 자유공원에 자리잡은 제물포구락부일 것이다. 1883년 개항 이후 인천에는 일본인들이 대거 이주했고 중국인들도 많이 왔지만 독일, 프랑스, 미국 등 서양의 선교사들과 상인들도 자리를 잡기 시작했다. 서양 각국 사람들이 사교를 위해 건립한 제물포구락부는 한국전쟁과 인천상륙작전의 포화 속에서도 살아남아 오늘에 이르고 있다. ▶1901년에 완공된 제물포구락부는 1913년 인천에 설치되었던 조계(租界)가 철폐되면서 일본 재향군인연합회에서 사용하다가 1934년에는 부인회관으로 이용되었다. 1945년 광복 이후에는 미군 장교구락부로 사용한 후 대한부인회가 쓰다가 인천상륙작전 후 사병구락부로 변신을 거듭해 왔다. 그만큼 이용 가치가 있는 건물이었던 것 같다. ▶1952년 미군으로부터 인수받은 인천시에서는 시의회와 교육청이 시립박물관과 함께 동거하다가 의회와 교육청이 이전한 후 1990년까지 시립박물관이 자리잡고 있었다. 필자도 초등학교 시절 제물포구락부에 있는 박물관에서 인천과 관련된 여러 가지 유물들과 임진왜란 당시 거북선이 그려진 그림을 보면서 충무공 이순신 장군을 흠모하던 기억이 새롭다. 118년이 된 제물포구락부 역사상 40여년 가까이 자리잡고 있던 시립박물관이 가장 오래된 기록일 것이다. ▶지난주 토요일(8월24일) 제물포구락부에서는 '개항~식민지 시기 인천의 문화인들'이라는 렉처콘서트가 열렸다. 시인이자 인천문화재단 이사장을 역임한 김윤식 씨는 개항 이후 우리나라 사람들 간의 문화적 결집력이 생겨나기 시작한 것은 1920년대부터라고 분석하면서 학생들 특히, 경인기차통학생 친목회가 중심이 되어 회지를 발간하면서 초보적 문화운동이 시작되었다고 했다. ▶8월10일부터 격주 간으로 열리는 렉처콘서트는 앞으로 인천은 왜 짠물인가?(유창호), 근대 사료와 유물로 보는 인천(신연수), 문학작품으로 읽어보는 인천(안정헌) 등의 특강에 이어서 인천아트센터 실내악단이나 인천 재즈올스타의 연주가 이어진다. 개항초기 서양인들의 사교 구락부로 문을 연 제물포구락부가 한 세기를 넘기면서 사회단체, 공공기관, 미군 장교·사병 구락부 그리고 시립박물관을 거쳐서 이제는 인천의 과거를 돌아보면서 미래를 설계하는 고품격 문화공간으로 활용되고 있다. 늦여름 따듯한 햇살을 받으며 강연실을 가득 메운 시민들과 함께한 시간은 오랜만의 행복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