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목요논단] 민족주의 정서 '불매운동'
[목요논단] 민족주의 정서 '불매운동'
  • 인천일보
  • 승인 2019.08.2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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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원준 인천대 중어중국학과 교수

불매운동은 특정 국가나 기업의 상품을 구매하지 않음으로써 정치적 불만을 표출하는 일종의 집단행동이다. 즉 경제적 수단을 동원해 정치적 의사를 표현하는 행동 양식이라고 할 수 있다. 이러한 불매운동은 주로 근대 이후에 나타난 현상이었다. 중국 현대사에서는 그 시발점이 20세기 초로 거슬러 올라간다.
제국주의 열강의 침략, 중국인 동포에 대한 멸시 등에 항의하기 위해 중국 민중들은 해당 국가의 상품을 팔지도 사지도 않는 방식으로 대응했다. 그 과정에서 '중국인'으로서의 정체성과 응집력은 더욱 강화됐고 결과적으로 근대 중국의 민족주의가 한 단계 더 성장할 수 있었다. 우리나라나 중국이나 근대의 초기 불매운동은 기본적으로 외세의 침략과 수탈에 대한 저항의 행위로서 이뤄졌다.


근래에 들어와서 불매운동의 성격이 더욱 다양해졌다. 중국의 경우에는 개혁개방 이후 급속한 경제 발전을 거듭하면서 20세기 초의 '동아시아의 환자(東亞病夫)'에서 벗어나 미국과 함께 'G2'를 이루며 세계적인 강대국으로 발돋움했다. 이러한 위상의 변화를 반영하듯 중국의 불매운동도 그 성격이 다소 변한 측면이 있다. 몇 년 전에 한반도 사드(THAAD) 배치를 둘러싸고 한중관계가 긴장되었을 때 전개된 불매운동이 그 사례일 것이다.

중국은 우리나라 상품에 대한 불매운동을 통하여 사드 배치를 무산시키려 했다. 강대국이 경제적 힘을 이용해 상대국에 자국의 정치적 의사를 강제하려한 것이었다고 볼 수 있다. 과거와 같이 외세의 침략에 대한 저항의 수단으로 불매운동을 활용한 것이 아니라 자국의 정치적 의사를 상대국에 일방적으로 강요하기 위한 수단으로 불매운동을 활용한 것이다. 100년의 시차와 국제적 위상의 변화가 가져온 차이일 것이다.
중국과 비교해서 보면 우리나라에서는 불매운동의 열기가 상대적으로 높지 않은 편이었고, 민족주의적 또는 정치적 동기에서 불매운동이 전개된 경험도 그다지 많지 않다.

근래에 우리나라에서 일어난 불매운동은 주로 기업윤리의 심각한 위반이나 위생 관리 문제 등이 계기가 되어 발생한 것이었다. 가장 대표적인 것이 2016년 가습기 살균제 사건이 계기가 되어 일어난 옥시 불매운동일 것이다. 많은 국민이 이 사건에 분노하였고 옥시 레킷 벤키저사에서 제조하는 제품에 대한 불매운동에 동참했다. 만족스러운 수준은 아니었지만 옥시 대표가 5년 만에 공식 사과와 함께 피해자 지원 기금을 늘리겠다고 발표했다.
최근 우리 사회에서 전개되고 있는 일본 제품 불매운동은 근래의 불매운동과는 다소 결이 다른 듯하다. 일단 과거의 어떤 불매운동보다 그 범위가 훨씬 넓고 그 강도도 훨씬 센 것 같다. 연일 발표되는 언론 보도에서 확인할 수 있듯이 일본 제품의 소비가 현저하게 줄어들었을 뿐만 아니라 그렇게 유행하던 일본 여행도 큰 폭으로 감소하고 있다. 그동안 어느 나라 기업의 제품인지 별로 상관하지 않고 소비하던 사람들이 이제는 '메이드 인 재팬(made in Japan)'인지 아닌지 살펴보고 구매 여부를 결정하고 있다. 게다가 현재 아베 정부의 태도로 볼 때, 이 불매운동이 과연 언제 끝날 것인지 짐작하기도 어렵다.
지금의 불매운동이 과거의 다른 불매운동보다 훨씬 강렬하게 전개되고 있는 이유는 무엇보다도 한국의 민족주의 정서와 직접 맞닿아 있기 때문일 것이다.

물론 현재의 불매운동이 과거와 같이 열강(일제)의 직접적인 침략에 대한 저항으로 발생한 것은 아니다. 그러나 아베 정부의 정책이 과거에 침략을 당했던 기억을 소환했다는 점에서 결과적으로 유사한 심리가 형성된다.

강제징용에 관한 대법원의 판결을 이유로 한국에 보복 조치를 취한 것은 결국 일본 정부가 과거의 침략 행위에 대해서 여전히 반성하지 않고 있음을 보여주는 것이다. 이는 한국에서 과거에 침략을 당했던 기억이 사회 전면으로 떠오르는 계기가 되었고, 이에 대한 반감은 민족주의적 정서와 결합해 현재의 광범위한 불매운동으로 연결됐다. 일각에서는 경제적 피해와 문화 교류의 단절, 외교적 곤경 등을 이유로 지금보다 냉정한 대응이 필요하다고 주장한다. 그러나 강렬한 민족주의적 정서에 의하여 촉발된 이번 불매운동은 그 원인 제공자의 문제 해결 노력이 선행되지 않는 이상 쉽게 사그라지지 않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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