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찬흥 논설위원

주민참여예산은 말 그대로 주민이 예산 과정에 참여하는 제도다 주민들이 얼마나 많은 정보에 접근할 수 있느냐가 이 사업의 성패를 가른다. 주민이 직접 사업을 제안하고 우선순위를 결정하는 분야는 더할 나위가 없다.
박남춘 인천시장은 '주민참여예산' 규모를 전임 시장보다 20배가량 늘렸다. 2020년에는 500억원으로 확대된다. 예산 규모가 커진 만큼 이에 대한 정보도 중요해질 수밖에 없다. 제안된 사업내용을 알아야 주민들이 투표에 참여할 수 있기 때문이다.

인천시 조례는 주민참여예산과 관련한 모든 회의를 공개하도록 명시하고 있다. 발언내용까지 밝히도록 의무화해 놓았다. 회의가 끝난 뒤 7일 이내에 '시 홈페이지에 이를 공개하여야 한다'고 못 박고 있다. 인천주민참여예산 운영 조례 제29조의 내용이다.
지난 25일부터 주민참여예산 시 계획형 사업 투표가 시작됐다. 분야별 회의를 통해 제안된 사업들의 우선순위를 정하는 작업이다. 청소년, 청년, 여성, 서해평화 분야 순으로 온·오프라인 투표가 이어진다. 각 분야에는 10억원 가량의 예산이 투입된다.
그러나 무슨 내용으로 시 계획형 투표를 하는지 사전에 알고 가는 사람들은 많지 않다. 인천시청 홈페이지를 아무리 뒤져도 확인되지 않는다. 조례가 규정한 회의록은커녕 기초적인 대화 내용조차 검색되지 않는다. 주민참여예산지원센터가 운영하는 페이스북이나 블로그를 찾아봐야 그 윤곽을 확인할 수 있다. 하지만 여기에서도 회의록은 찾기 힘들다.

인천시 공무원에게 "시 계획형 회의에서 논의된 내용이 무엇인가"라고 물어봤다. 돌아온 것은 "정보공개를 청구하라"는 퉁명스러운 대답이었다. 정보공개는 그 결정에만 최장 10일이 걸리고, 공개에도 또다시 10일이 소요된다. 그러다 비 공개결정이라도 나면 소송을 불사해야 한다. 시 공무원들에게 조례가 정한 '7일 이내 공개' 의무조항은 남의 나라 얘기다.
당초 주민참여예산은 재정의 투명성과 공정성, 민주성을 위해 도입됐다. 하지만 시 계획형 사업을 둘러싸고 갖가지 의혹이 끊이지 않고 있다. 여기에 특정 정당·단체 개입 논란이 겹치면서 불법·편법 시비로 몸살을 앓고 있다.
박 시장은 지난해 7월 취임사에서 "원문정보 공개를 통해 행정의 투명성을 높이겠다"고 약속했다. 1년 뒤, 붉은 수돗물 사태 재발 방지책 발표 때도 '정보공개 확대'를 다짐했다. 그러나 현장 공무원들은 이에 아랑곳하지 않는다. 시장이 뭐라고 하건, 인천시 조례가 무엇이건 일단 입부터 다문다. 제2의 붉은 수돗물 사태를 보는 듯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