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미림극장.


지난주 30여년 만에 미림극장에서 영화를 봤다. 미림극장은 1957년 동구 송현동 중앙시장 진입로에 '평화극장'이란 이름으로 천막을 세워 무성영화를 상영하면서 시작됐다.
문화 시설이 변변치 않았던 시절, 미림극장은 서민들의 애환을 달래주고 아이들의 꿈과 상상력을 키워주던 공간이었다. 미림은 복합상영관에 밀려 2004년 영화 '투 가이즈'를 끝으로 문을 닫았다가 9년만인 2013년 '추억극장 미림'으로 재개관하며 우리 곁으로 돌아왔다.
영화가 시작되기 전 '흔적'을 더듬었다. 매표창구, 매점, 이층객석, 영사실 등이 그대로 있었다. 우리에게 이소룡과 찰스 브로슨 등을 보여줬던 당시의 영사기가 한쪽 구석에 전시돼 있다. 극장 안 일층 양쪽 코너에 있던 임검석(臨檢席)이 보이지 않아 은근히 아쉬웠다.
미림극장의 특징은 영화가 끝나자마자 대로변 쪽 두 개의 출구가 활짝 열렸던 점이다. 두 시간 내내 컴컴했던 극장 안으로 순식간에 강렬한 빛이 쏟아져 들어왔다. 영화의 잔상을 되새길 틈도 없이 현실 세계로 빨리 돌아가라고 채근하는 듯했다.
그날 본 영화는 '주전장(主戰場)'이었다. 일본계 미국인 감독 미키 데자키의 시선으로 풀어낸 일본군 위안부 관련 다큐멘터리 영화다. 관람 내내 일본 극우 세력들의 망언과 궤변에 몹시 불편했다. 하마터면 욕이 튀어나올 뻔한 장면도 있었다.
이 영화는 대형 복합상영관에서는 몇 차례 상영하고 바로 막을 내렸다. 배급사와 영화관 측에서 보면 돈이 안 되는 영화다. 자칫 놓칠 뻔한 영화를 미림극장 덕에 보게 되었다. 공간으로는 '추억 소환', 영화로는 '감성 충만'을 선사하는 미림극장이 그저 고마울 뿐이다. 미림이 계속 그 자리를 지켜 줬으면 하는 바람이다.
/인천시립박물관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