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힐링카페] 직관은 타고나는가
[힐링카페] 직관은 타고나는가
  • 인천일보
  • 승인 2019.08.2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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양혜영 한국정신분석상담학회장

누군가 직관력이 뛰어나다고 할 때 대체로 우리는 그것을 타고난 성향으로 본다. 직관이란 말도 사고의 과정을 거치지 않고 곧바로 알아내는 능력을 의미한다. 그러나 사고의 과정을 거치지 않는다기보다 그 과정이 너무나 빨라 의식하지 못할 뿐이다.
직관은 전문가 혹은 고수와 일반인을 가르는 중요한 능력이라고 할 수 있다. 1998년 서양장기 세계 챔피언인 Ron 'Suki' King은 놀라운 경기를 보여주었다. 그는 3시간44분 동안 무려 385명의 선수들과 동시에 경기를 한 것이다. 각 선수는 말의 움직임을 고민할 시간이 있었지만, King에게는 단지 35초만 주어졌다. 매번 그는 장기판을 흘낏보고 결정하자마자 다음 선수에게 가야만 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는 385명의 선수를 모두 이겼다.


전문가는 당연히 더 많은 걸 안다. 그래서 전문가 아닌가. 체스 전문가는 단지 5초 동안 판을 보고 말들의 위치를 기억할 수 있다. 체스 초보자는 체스판 위의 말의 위치를 거의 기억하지 못하고, 좋은 선수급에 들면 1000개 정도, 그리고 체스 대가는 5만개 형태를 기억한단다. 전문가는 판 위의 말을 각각 따로 기억하는 것이 아니라 덩어리(chunk)로 기억한다. 그러니 더 많은 걸 기억하는 건 당연하다. 체스판을 흘낏보는 것만으로 의미 있는 형태를 재빨리 재인할 수 있다. 그러나 체스판의 말들을 제멋대로 두면 대가나 초보자나 기억에서 별로 차이가 없다.

같은 상황을 봐도 전문가는 무엇을 어디를 보아야 할지 잘 알고 있다. 초보자는 어디를 봐야 할지 모르니 열심히 보지만 얻는 정보가 별로 없다. 그리고 무엇을 봐야 하는지 말로 설명하는 데는 한계가 있다. 그 부분은 오랜 시간의 경험과 훈련으로 획득하는 것이다. 그것을 어떤 사람은 암묵적 지식이라고 하고 어떤 이는 직관이라고도 한다. 직관이란 천부적으로 타고나기보다 연습과 경험으로 생성되는 부분이 더 많다. 어느 분야든 진정한 고수란 지루한 연습 속에서 탄생하는 것이다. 35초 만에 체스판의 움직임을 결정하는 것처럼 빠르게 효율적으로 이루어지는 능력은 연습에서 나온 것이다. 체스만이 아니라 바둑의 대가도 그럴 것이다.
일반인들이 일상적으로 하는 의사 결정 방식은 어떨까. 첫째는 습관적으로 선택하거나, 전에 선택한 것을 고른다. 대개 생각하기 귀찮거나 게으르거나 혹은 호기심이 없거나 아니면 둘 다 일 것이다. 둘째는 대세를 따른다. 이것이 가장 쉽고 실패할 확률도 낮다. 그래서 대부분의 사람들이 선택하는 걸 그대로 따른다.

어떤 사람은 식당에 들어가면 다른 사람들이 먹고 있는 음식을 선택하곤 한다. 이유는 간단하다. 고민하기 싫단다. 그런 일로 스트레스 받기 싫다는 것이다. 물론 다른 사람들이 많이 먹는 음식은 그 식당에서 가장 맛있는 음식일 수 있다. 아니면 자신이 추종하거나 성공한 사람을 그대로 모방한다. 이런 심리 때문에 거액을 지불하며 유명인을 각종 상품 선전에 내세우는 것이고, 또한 서점의 한 코너에 성공적인 CEO에 대한 책들이 즐비한 거 아니겠는가. 다수를 따르면 일단 안전하다. 틀려도 혼자 바보가 되지 않는다. 얼마나 위로가 되나. 바보들 속에서 멍청이 하나는 외롭지 않다.

셋째는 종교적 원칙이나 문화적 요구에 따른다. 부모나 다른 권위적 존재가 가르치는대로 선택하고 따르는 행위다. 이것은 이 땅에 태어나는 순간부터 수없이 강요받는 선택으로 우리에게 가장 익숙한 방식이다.
그러면 보통 사람들에게는 이런 의사 결정 방식 밖에는 없는 것일까. 물론 다른 방식이 또 있다. 그것은 머리를 많이 써야 하는 합리적 의사 결정 방식이다. 그럼 지금까지의 의사 결정 방식은 합리적이 아니란 말인가? 그 방식들은 일종의 지름길로 쉽고 빠르다는 점에서는 만족스럽다. 그런 점에서 보통 사람들에게는 경제적이고 합리적일 수 있다. 이런 일상적인 선택은 편하지만 그렇다고 해서 합리적인 결정은 아니다.
우리 모두 현명하고 합리적인 선택과 결정을 하고 싶어하지만 현명하고 합리적 결정은 욕구만으로 이루어지지 않는다. 합리적 결정과 판단은 많은 노력과 기술을 요구한다. 우리 모두 고수가 될 필요는 없다. 그러나 최소한의 합리적 판단을 하기 위해 입보다 눈과 귀를 항상 열어놓아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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