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 인천을 읽다] 첫 키스-함기석 
[시, 인천을 읽다] 첫 키스-함기석 
  • 인천일보
  • 승인 2019.08.2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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너의 입술에서
장미꽃이 피어난다 /새들이 날아오른다
새들이 날아가는 호수가 보인다
눈이 예쁜 물뱀 하나 뭍으로 올라온다
꽃밭을 지난다 /앵두밭을 지난다
탱자나무 울타리 지나 내게로 온다
흰 벽돌담 넘어 내게로 온다
미끈미끈 내게로 다가오는 어린 뱀은
미끈미끈 내게로 다가오는 너의 혀
두근두근 내 입술에 살을 비빈다
나의 입술에서
빠알간 금붕어들이 쏟아진다
빠알간 코스모스 꽃잎들이 쏟아진다
아 가을이다 /나는 손을 쭈욱 뻗어
구름을 따 네 눈에 넣어준다
해와 달을 따 네 입에 넣어준다
하늘 가득 아름다운 피아노 소리 울려 퍼진다


무엇이든 '첫'이라는 단어는 뒤에 따라오는 말과 사물들에 새로운 숨결을 불어넣는 힘을 가지고 있다. 첫걸음, 첫돌, 첫눈, 첫마디, 첫사랑, 첫출발 등 '첫'은 시작의 분명함과 절연감, 즉 가슴 떨리게 하는 '설렘'과 함께 이전의 모든 것을 상쇄하는 '두려움'을 동시에 내포한다. 그러니까 '첫 키스'는 처음과 끝, 설렘과 두려움, 따뜻함과 차가움, 숭고와 공포, 낯섦과 익숙함 등의 사이에 놓인다. 이런 첫 키스의 순간을 함기석 시인은 첫 구절에서부터 자유롭고 파격적인 이미지들로 구사한다.

"너의 입술에서/ 장미꽃이 피어난다"라는 첫 구절부터 "하늘 가득 아름다운 피아노 소리 울려 퍼진다"라는 마지막 구절까지 함기석 시인이 펼치는 이미지의 향연은, 고정적이고 제한적인 질서의 울타리를 넘어 자유로운 상상의 공간에서 유동하도록 만든다. 너의 입술에서 장미꽃이 피어나고, 새들이 날아오른다거나 나의 입술에서 빠알간 금붕어들과 코스모스 꽃잎들이 쏟아진다는 표현들은 직접적으로 육박해 오는 첫 키스의 감동과 경이로움을 독특하게 감각화하고 있다. 특히 "미끈미끈 내게로 다가오는 어린 뱀은/ 미끈미끈 내게로 다가오는 너의 혀"라는 구절은 '어린 뱀은 너의 혀'라는 은유의 형식을 띠고 있지만, 우리의 의식을 고정시키거나 재현하는 기능적 요구에 예속되지 않는다. 오히려 이 구절의 형식은 '뱀'과 '혀'의 이미지의 유사성에 '미끈미끈'이라는 관능적인 시어를 결합시킴으로써 우리의 상상력을 더욱 자극적이고 원초적인 곳으로 유도한다. 아침저녁으로 제법 선선한 바람이 분다. 곧 가을이다. 함기석 시인이 펼쳐 놓은 상상의 세계, 아름다운 피아노 소리로 가득 울려 퍼지는 하늘 속으로 한 번 들어가 보는 것은 어떨까.

/강동우 문학평론가·가톨릭관동대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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