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물포럼] 제대로 된 문화 즐기기
[제물포럼] 제대로 된 문화 즐기기
  • 박현정
  • 승인 2019.08.2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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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현정 경기본사 문화기획부장

8월 '문화가 있는 날'이 다가왔다. 매월 마지막 주 수요일은 다양한 문화를 쉽게 접할 수 있는 날이다. 문화체육관광부는 2014년 1월29일, 한달을 즐겁게 만드는 하루 콘셉트의 '문화가 있는 날'을 첫 시행했다. '문화가 있는 날'에는 클래식, 연극, 무용 등의 각종 공연을 지역 내 공연장에서 무료 또는 할인 관람할 수 있다. 박물관, 미술관, 고궁 등을 무료 입장할 수 있으며 영화와 스포츠 등도 할인된 가격에 즐길 수 있다.
'문화권'은 국민의 권리다. 2013년 12월 문화기본법이 제정되면서 국가와 지방자치단체는 모든 국민에게 문화향유의 기회를 제공해야 하고 문화예술 진흥의 책무도 지게 됐다. 문화예술의 정신적, 심미적 가치들이 개인의 행복 추구와 맞닿자 문화예술에 대한 국민 수요는 점점 증가하고 있다.


'문화가 있는 날' 시행 5년여 동안 문화는 시민들 곁으로 성큼 다가왔다. 먹고 살기 힘들던 시절, 사치로 여겨지던 문화가 경제·사회의 발전 속에 차츰 생활 속의 문화, 쉼을 주는 문화로 자리 잡아가고 있다. 지역 곳곳에서 문화예술인들의 공연·전시가 진행되고, 각종 문화예술 관련 교육도 활성화되고 있다. 다양한 문화예술 향유의 기회는 경제 발전과 민주주의의 성숙 속에 꾸준히 확대될 것이다. 그러나 여전히 주변을 돌아보면 한달을 즐겁게 만드는 하루의 문화생활조차도 제대로 즐기지 못하는 사람들이 태반이다. 특히 주변에 자녀들을 키우며 왕성한 사회 활동을 하고 있는 40, 50대 문화 수요층을 보면 타인의 시선을 의식한 외적 권위로 문화를 소비하는 경향이 종종 목격된다.

문화향유에 있어 과시가 선택의 기준이 되면 문화는 즐기는 문화가 아닌 공부하는 문화가 되어 버린다. 나와 내 아이가 얼마나 고상한 공연·전시를 많이 봤는지, 얼마만큼 난해한 공연·전시를 이해하는지 등 남에게 보이기 위한 과시적 문화 소비 행태가 보통 사람들의 행복한 문화생활 즐기기를 방해한다. 스스로가 문화예술을 즐기는 것이 아니라 이 정도는 돼야 수준 있는 문화인으로 보일 수 있다는 생각으로 겉치레 문화생활을 하지는 않는지 한번쯤 생각해볼 필요가 있다.

실제로 어려운 영화를 만들기로 유명한 안드레이 타르코프스키 감독의 유작 '희생(1986)'은 국내에서 매우 인기가 없었지만 영화평론가들이 극찬하자 순식간에 관객 3만명이 들었다. 이는 세계에서 '희생'을 본 가장 많은 관객 수다. 또한강 작가의 소설 '채식주의자'는 1년 동안 500권가량 팔렸었는데 2016년 세계 3대 문학상 중 하나인 맨부커 상을 수상하자 한 시간 당 600권이 팔리며 한달에 20만권을 찍기도 했다. 수상 이력이 알려진 당시 온라인 서점에서는 1분에 9.7권씩 팔리며 15년 내 가장 빠르게 팔린 책으로 기록됐다. 이 정도 되는 영화나 책은 봐줘야 나도 수준 있는 문화인이 될 거라는 생각이 모아진 결과가 아닐까 싶다.

과거나 현재의 기초예술 접근 방법도 문화생활을 즐기는 데 걸림돌이 된다. 기성세대들은 학창시절 음악이나 미술을 삶을 풍요롭게 하는 문화예술로서의 접근이 아닌 시험 성적을 위한 암기과목으로 배웠다. 개인마다 느끼는 대로 즐기는 것이 예술인 것인데 맞고 틀리는 정답을 찾아내는 시험으로 예술을 배웠다.
시대가 변해 그들의 자녀는 체험식 교육을 받고 있지만 현장에서 만나는 아이들의 모습은 기성세대들의 모습과 크게 다르지 않다. 클래식 공연장에서 조는 아이의 옆구리를 찌르고 공연 곡을 외우라고 주문하는 부모가 있는가 하면 미술관에서는 작품 모두를 꼼꼼히 보지 않고 건너뛴다고 잔소리를 해대는 부모도 있다. 이쯤되면 문화예술은 즐기는 대상이 아니라 고상한 척하기 위한 수단이 되거나 시험 성적을 높이기 위한 귀찮은 암기의 대상밖에 되지 않는다.

"문화예술을 공부하는 사람은 많은데 즐기는 사람은 많지 않다." 오랜 세월 청소년 오케스트라를 이끌어온 한 예술감독의 얘기다. 머리가 좋아진다는 클래식 음악을 학습의 도구로 삼아 듣다 보니 마음이 아닌 머리로 듣게 되면서 예술이 주는 진정한 감동을 맛보지 못하고 있음을 안타깝게 바라보게 된다. 가장 원초적인 감정을 담아내는 것이 문화예술이다. 머리가 아닌 눈으로, 귀로, 열린 마음으로 즐길 때 문화예술이 주는 일상 속 행복감을 느낄 수 있다. 제대로 즐기는 한달에 하루, '문화가 있는 날'이 자리잡길 기대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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