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장인의 발견] 악기장 윤종국
[장인의 발견] 악기장 윤종국
  • 심재학
  • 승인 2019.08.22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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언젠가 평화 부르는 '통일고' 만드는 게 꿈
▲ 4대째 가업을 이어 전통북을 만들고 있는 윤종국 악기장이 제작한 전통북 앞에서 미소 짓고 있다.


4대째 이어온 가업 17세부터 계승
왕실행사·법고용 등 전통북만 제작
두 달~1년 걸리는데 판로는 한정
생계 막막해 체험·강의 뛰기도
줄어드는 관심 안타까워
시·도에서 전승공간 마련해주길

사람의 심장 박동 소리와 비슷한 전통북 소리. 북이 둥둥 울리면 가슴이 뛰기도 하고, 호흡이 편안해 지기도 한다. 이런 태고의 북소리를 내는 전통북을 가업으로 지키며 만들어온 이가 있다. 국내에서 국가무형문화재와 시·도무형문화재를 통틀어 다섯 손가락 안에 꼽히는 전통북 전승 장인 윤종국 악기장이다. 구리시환경사업소 한쪽에 자리한 공방에서 전통북을 만들고 있는 그를 8일 만났다.

#증조부부터 4대째 전통북 계승

윤종국 악기장은 증조할아버지부터 시작한 전통북 만들기를 4대째 계승하고 있다. 그는 국가무형문화재 제42호인 고(故) 윤덕진 악기장의 장남으로 17세부터 북 만드는 일을 부친에게 배웠다. 가죽이나 나무를 사고, 각종 도구를 나르는 등 자질구레한 일부터 시작해 각종 북 제작 기술을 부친에게 이어받아 전통북 장인이 됐다.

"제가 어릴 때는 공방이 따로 없었어요. 집안에서 작업하다 치우면 잠자리였고, 또 일하다 대충 치우고 상을 펴면 식사자리였어요. 집에서 먹고 자며 일을 했죠. 다른 일에 눈을 돌릴 겨를이 없었습니다. 평생 북을 만들며 가업을 이어온 것이죠."

그의 가족이 구리에 정착한 것은 1979년. 부친이 망우리고개 딸기원(교문동)으로 넘어오면서부터다. 서울에 살면서 북을 만들었는데 가죽 냄새와 나무 뚝딱거리는 소리에 항의하는 사람들이 많아 당시 한적했던 구리로 이사한 것이다.

"구리는 고향이나 다름없어요. 어릴 때부터 살다 보니 추억도 많지요. 어딜 가도 다 아는 사람이고 지역 곳곳이 친밀해 마음이 편하죠. 동구릉·아차산 유적 등 문화유산이 많고, 시민들이 전통문화에 대한 관심이 많은 것도 좋아요. 이런 구리시가 전통문화와 예술을 계승·발전시키는 대표적인 전승도시가 됐으면 좋겠어요."

윤종국 악기장이 부친과 심혈을 기울였던 전통북 작업은 이제 3형제가 함께 이어가고 있다. 형제가 같이 일하니 호흡이 좋고 분야별로 나눠 일하니 완벽한 전통북 작품이 나오는 게 장점이다.

#전통의 맥 잇지만 생계 막막

문제는 생계다. 윤종국 악기장이 만드는 북은 사물놀이북 같은 일반적인 북이 아니다. 조선 왕실에서 썼던 25종의 행사북이나 사찰에서 쓰는 큰 북이다. 국가무형문화재 보유자전이나 불교미술대전 등 전시에 나가는 것이 대부분이고 판로도 한정돼 있어 경제적인 형편이 말이 아닌 상황이다.

"그나마 지방자치단체나 사찰에서 들어오던 주문도 경기가 좋지 않아 다 끊어졌어요. 나라에서 무형문화재 전수자들에게 지급하는 60여만원의 전승비와 전통북 만들기 체험, 강의 등으로 버티고 있습니다. 생계가 막막하죠. 가업을 버릴 수 없어 뛰어든 3형제에 딸린 식솔까지 먹여 살릴 일이 걱정입니다."

윤종국 악기장이 만드는 전통북은 크기가 크다. 가죽을 씌운 곳을 광이라고 하고, 북 몸통의 겉 나무를 고라고 하는데 광과 고 크기에 따라 소리 차이도 있고 용도도 다르다. 그가 만드는 북은 주로 법고나 승무할 때 치는 북, 왕실행사 때 쓰는 북, 신문고 등이다.

광 120㎝에 고 180㎝ 정도의 큰 북을 제작하는데 통상 6개월에서 1년 정도 걸리고, 광과 고 모두 90㎝인 작은 북 제작 기간은 두세 달이나 된다. 북을 팔아 생계를 유지하기 힘든 이유 중 하나다.

"현재 구리시환경사업소 내 공방을 형제들과 함께 운영하고 있어요. 작업 환경이 열악해도 기술 전수에는 큰 무리가 없지만 전통북을 체험하고 교육하는 곳으로는 적합하지 않지요. 서울시 삼성동에 있는 국가무형문화재 전수교육관에서 전통북 만들기 체험 행사 등을 하고 있으나 한계가 있죠."

#종합 전통예술학교와 통일북을 꿈꾸다

그는 시민들이 전통북 뿐 아니라 각종 전통예술을 체험하면서 전통문화에 대한 관심과 애정을 키우길 바란다. 손재주가 있는 지역 청소년을 발굴해 전통예술의 맥을 이어가도록 교육하는 전통북 전수교육관이 생기길 간절히 희망하고 있다.

"아이들에게 북 만들기를 체험하게 했는데, 호응도가 굉장히 높았어요. 북을 만들고 북을 둥둥 울려보면서 전통북에 관심을 보일 때 가업을 지켜온 보람이 있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윤 악기장은 북 뿐 아니라 도자기·대나무·돌 공예 등 전통예술를 전수하는 종합 전통예술학교를 만들어 아이들에게 교육하며 우리 전통이 잊혀지지 않도록, 또 아이들이 전통을 사랑하는 마음을 갖도록 이끌고 싶단다. 아이들이 각종 기술을 익혀 전통예술의 재목으로 커 나가다면 구리시의 전통문화가 꽃을 피울 수 있고 한국의 전통문화를 국내외에 전파시키는 곳이 될 것이라는 게 윤 악기장의 생각이다.

"제가 수십년 동안 북을 만들어 왔는데도 이곳에 국가무형문화재 전통북 공방이 있는지도 모르는 사람들이 태반이지요. 전통예술의 거점으로 구리를 알리고 싶은데 활동공간이 없어 아쉽습니다. 시나 도에서 전승 혹은 체험공간을 만들어주면 전통문화 계승에 큰 도움이 될 것입니다. 저는 국가무형문화재가 되는 개인적인 영예보다 가업을 5대에 승계하고 지역의 전통문화를 발전시키는 게 더 중요해요."

그가 전통북 제작 중 가장 하고 싶은 작업은 '통일고'다. 통일고를 만들어 남북교류의 상징물로 남기고 싶다던 부친의 유지 때문이다.

윤 악기장이 구상하는 통일고는 북통에 들어가는 나무판 하나하나에 국민의 통일 염원을 담은 글과 그림을 넣고 남과 북의 소가죽을 함께 씌워 양측 지도자의 사인을 담는 것이다.

윤종국 악기장은 "구리에서 만든 통일고가 통일을 상징하는 장소나 남과 북에서 각기 울려 퍼져 평화통일을 염원하면 좋겠다"며 "통일의 북은 평생의 숙원사업이 될 것"이라고 말했다.

/글·사진 구리=심재학 기자 horsepia@incheon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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