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형수 논설실장

군인이거나 전역한 사람들의 대부분은 유격훈련을 경험했다. 'PT(physical training) 8번 준비'라는 빨간 모자 유격조교의 구령에 반발할 현역은 없었다. 그만한 명분이 충분히 깔려 있기 때문이다.
유격훈련의 아성은 PT체조다. 그 중 8번, '온몸 비틀기'는 지옥 수준으로 정평이 나 있다. 1980년대 초반 인권침해의 현장 삼청교육대의 얼차려 상징이었던 봉체조도 고도의 유격체조 중 하나다. PT가 팀워크강화훈련으로 표현되기도 하지만 온몸의 힘을 모두 소진시킬 정도의 강도 높은 극기훈련이라는 것을 부정할 수 없다. 용감하고 적응력 높은 올빼미 번호를 부착하고 가장 공포를 느끼는 11m 막타워훈련을 겪었다면 군번이 좀 앞선 세대이다.

유격은 행군도 관건이다. 마지막 구호 놓치는 이른바 '새 대가리' 동료는 함정이다. 먼 과거라서 고통의 강도가 희석되는 요즘, PT가 과도한 스트레칭이었다는 자조적 회상으로 떠오르기도 한다. 유격장 PT는 부상 방지가 최선의 목적이고, 잠시라도 집중하지 못하면 사고로 이어지기 때문에 군기를 세운다. 유격훈련 불운도 종종 있었다. 제대 말년 전역 대기자가 올빼미번호를 다는 경우다. 간혹 선착순도 빼놓을 수 없는 훈련이었다. 하지만 이야말로 공평하지 않은 것 같다. 상하를 막론하고 올빼미번호 하나만으로 훈련의 공평성을 상징했던 유격훈련에서 각 개인마다 신체적 조건이 같을 리 없건만 항상 선착순 출발선은 똑같았기 때문이다.

요즘 젊은이들은 수저계급론, '기울어진 운동장'을 주장한다. 선착순 출발선의 억울함이 자조 섞인 파생어로 탄생하는 시대다. 간혹 부모의 정치적, 경제적 배경이 학업성취도를 가늠하는 잣대가 된다는 연구결과도 많다. 반면, 청년취업이 화두가 되는 현실에서 개천에서 용이 날 확률이 점차 사라지고 있다는 젊은이들의 항변이 이미 체화된 듯싶다. 한국 사회에서 불평등, 불공정이 과거보다 제법 줄어든 것은 사실이나 일부 사회 지도층의 편법은 여전히 시끄럽다.

지난해 7월 교수 혹은 동료, 지인들의 자녀를 논문저자로 올리고 대학입시 '스펙'으로 악용한 사례들이 적지 않다는 여론이 들끓자 교육부가 전국 402개 대학에 대한 전수조사를 실시하기도 했다. 연구윤리 확립에 대한 칼바람이 불었었다. 입시 제도의 허점이다. 학문 분야에 따라 연구방법과 결과는 다양하게 나타날 수 있다. 연구 성과는 뚝딱 나오는 도깨비방망이가 아니다. 반드시 논문의 질을 세심히 평가할 수 있어야 한다. 입시부터 선착순 출발선의 불공정이 작용한 결과라는 청년들의 분노가 거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