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상 속 일제 찌꺼기 걷어내고 '우리말 독립' 나서야
일상 속 일제 찌꺼기 걷어내고 '우리말 독립' 나서야
  • 이경훈
  • 승인 2019.08.21 00:05
  • 수정 2019.08.22 10:15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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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국립국어원이 2005년과 2012년 펴낸 일본어 투 구축자료를 보면 일상 언어생활에서 널리 쓰이는 일본어 투 용어는 모두 1171개로 조사됐다. 사진은 국립국어원 전경. /사진출처=국립국어원


"3시부터 편집 회의가 열린다는 회람(돌려 보기)이 돌았다. 내 나와바리(구역)에서 취재한 내용은 아파트 미분양 물량에 대한 가계약(임시 계약)이 이뤄지고 있다는 것과 건설현장 노동자들이 노임(품삯)을 제대로 받지 못한다는 것 두 부분이었다."
기자가 취재 현장에서 자주 듣고 내뱉었던 일상적인 언어다. 나와바리는 일본어라는 사실을 익히 알고 자제했지만, 회람과 가계약 등 일상에서 접했던 용어가 모두 일본어 투란 사실까지는 생각지 못했다.
도비라(표제지), 하시라(잡지의 중요한 항목), 미다시(신문의 표제, 헤드라인) 등 이처럼 신문편집과 취재현장에서 쓰는 일본어가 수두룩하다.

'지라시' '삐기' '와쿠' '소데나시' 등의 순 일본어와 '노견' '대금' '망년회' '사양' 등의 일본식 한자어를 일상 언어생활에서도 쉽게 찾아볼 수 있다. 전문 기술분야에서도 일본어가 일상적으로 쓰이고 있다. 건설현장에서는 '노가다' '나라시' 등이, 자동차 정비 현장에서는 '기스' '마후라' '쇼바' 등이 널리 통용된다. 봉제, 인쇄, 방송 현장에서도 일본어 투 용어가 득세하고 법률, 의학 등의 학술분야에서도 일본식 한자어가 전방위에 퍼져 있다.
일본은 1938년 역사상 유례없는 민족말살정책을 자행했다. 민족의식을 없애려 우리 말과 글을 쓰지 못하게 했다.

초등학교에서부터 우리말 사용을 금지했고, 교육은 오로지 일본어로 진행됐다. 일왕에게 충성을 다할 것을 맹세하는 '황국 신민의 서사'를 만들어 소리 내어 읽고 외우게 했다. 민원서류 등에도 모두 일본어를 사용토록 하면서 언어 말살을 꾀했다.
올해는 일제강점기에서 벗어난 지 74년. 우리는 여전히 몰라서, 습관적으로 또는 편하다는 이유로 일본어를 사용하고 있다.
20일 국립국어원에 따르면 광복 직후부터 정부는 대대적으로 일본어 투 용어를 우리말로 순화하는 정책을 펴왔다. 지자체나 공공기관마다 '올바른 언어 사용 캠페인'을 펼쳤고, 그 결과 공공영역에 침투한 일본어 투 용어 상당수가 사라졌다.

하지만 일상 언어생활과 건설 등 전문기술분야에서는 여전히 일본어가 일상적으로 쓰이고 있다.
국립국어원이 2005년과 2012년 낸 일본어 투 구축자료를 보면 일상 언어생활에서 널리 쓰이는 일본어 투 용어는 모두 1171개로 조사됐다.
이중 순 일본어가 474개에 달했고, 일본식 발음의 한자어는 436개, 일본식 발음의 서구 외래어 141개, 혼합형 87개, 일본식 영어 33개로 나타났다.

우리가 흔히 알고 있는 출산은 일본말이다. 우리말로 표현하면 해산이다. 일제강점기 이전까지 없던 단어다. 1920년부터 한국에서 사용되기 시작했다. 축제도 마찬가지다.
국립국어원이 한·중·일 서적을 연구한 결과 1883년 일본소설인 경국미담(經國美談)에서 처음 쓰였다. 우리말로는 '잔치'다. 이 단어는 1900년 초 일본에서 넘어온 것으로 추정된다.
구사리(핀잔), 아타라시(새것), 유도리(융통), 시다바리(보조원), 와쿠(틀), 모치(찹쌀떡) 등이 우리가 일상생활에서 흔히 쓰는 일본말이다.
취미생활을 즐길 때도 일본어를 사용하는 경우가 많다. 흔한 당구장만 가더라도 '겐세이(견제)', '다이(대)' 일본어가 난무한다. '겐뻬이로 치자'. 즉 팀을 나눠서 당구를 하자는 의미다. 이 말은 일본의 '겐페이노갓센'이라는 말에서 유래됐다.

특히 공사현장에서는 한국어보다 일본어가 더 익숙하다. 노가다(노동자), 가쿠목(각목), '가다(틀)', 나라시(고르기), 단도리(채비), 시마이(마무리), 빠루(지렛대) 등 일본어 사용이 굳어지면서 외우지 않은 이상 의사소통에 어려움을 겪는다.
이들 말 모두 일제강점기 때 넘어온 것으로 추정된다.
올바른 우리말을 전달하는 언론계에서도 일본어 사용은 습관화 돼 있다. 수습기자가 들어오면 경찰서를 돌면서 사건·사고를 취재하는 교육을 한다. 언론계에서는 이를 사쓰마와리라고 한다. 사쓰마와리는 게이사쓰(경찰)와 마와리(돌다)를 붙인 단어다. 하리코미라는 일본어도 많이 쓰인다. 하리코미는 잠복근무라는 의미의 일본어를 그대로 따온 것이다.
국립국어원 관계자는 "적절한 우리말이 있는데도 전문 분야에서 일본어 사용이 두드러진다.
올바른 우리말 사용을 위해서, 원활한 의사소통을 위해서라도 순화에 사용해야한다"며 "생활 속에 자리 잡은 일본어 투 표현을 바꾸기는 쉽지 않지만 먼저 일본어 투 용어인지 아닌지 알고 고쳐 나가야 한다"고 밝혔다.

/이경훈 기자 littli18@incheon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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