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준한 인천대 정치외교학과 교수

 

 

8월15일 종전 관련 추도식에서 새 일본왕이 "과거를 돌아보며 깊은 반성 위에서 두 번 다시 전쟁의 참화가 반복되지 않기를 간절히 바란다"고 했다. 그러나 아베는 전쟁에 대한 반성이나 책임에 대한 일언반구도 보태지 않았다. 일본의 아사히신문도 17일 최근 한일 관계를 개선하기 위해서 아베 정부가 과거사 반성을 표명할 필요가 있다고 지적했지만 아베는 꿈쩍하지 않는다.

아베 또는 일본정부의 이율배반성은 역사도 길고 매우 노골적이면서도 자기 파괴적이다. 이번에 우리 한국을 대상으로 수출규제를 공표한 시점은 자유무역을 주제로 주요 20개국 정상회담을 오사카에서 가진 직후였다. 한국을 화이트 리스트에서 빼면서 보복조치가 아니라 북한으로 전략물자가 유출되는 것을 막기 위한 것이라고 했다가 강제징용 배상문제에 대한 보복성격이 있다고 살짝 흘리기도 했다. 실제로는 한국이 북한으로 전략물자를 보낸 증거는 없고 오히려 일본에서 전략물자는 물론 사치품까지 건너갔던 증거가 나왔다.

일본이 한국을 우습게 여기고 반성하지 않는데 그 핵심은 1910년 한일합방을 불법이라고 하지 않으려는데 있다. 일본은 한국을 식민 지배했던 것이 합법이었기 때문에 사과할 것도 없고 배상할 것도 전혀 없다고 한다. 친일파들로 하여금 나라를 팔아먹게 온갖 술수를 다 써서 목적을 달성했고 우리 민족의 운명을 잔혹하게 짓밟아 놓고선 그 모든 것이 불법적이지 않았다는 말이다. 1965년 한일협정을 맺으면서도 이런 논리를 고스란히 적용시켰고 2015년 최종적이고 불가역적이라는 위안부 합의를 할 때도 그랬다. 앞으로 북한과 배상 문제가 남아 있기 때문에 일본은 한국에 이러한 논리에서 절대로 물러나지 않는다.

따라서 전쟁을 일으켰던 입장에 일본정부나 아베가 한국이 국가간 약속을 깨고 국제법을 위반했다고 주장하는 것은 어불성설이다. 일본은 자신들이 이미 1961년부터 한국인에 대한 개인적 청구권까지 모두 해결되지 않았다는 것을 인정했다. 1970년대에도 동경대 오누마 교수가 한국에 개인 청구권이 살아있다고 인정했다. 루소의 사상에 따르면 개인 청구권은 천부의 권리라서 국가에 의해 결코 소멸되지 않는다는 것이다. 그래서 국가가 피해자에게 협의도 하지 않고 최종적이고 불가역적인 위안부 합의를 했다고 발표했거나 전쟁 책임을 명시하지 않고 한일협정을 맺은 정치인들의 문제가 엄중한 것이다. 이런 와중에 일본이 오히려 우리가 약속을 깨서 큰 피해를 입은 듯이 전 세계를 현혹하고 있다.

일본의 이율배반적인 면모가 노골화되는 것은 과거뿐 아니라 미래와도 관련돼 있다. 2020년에 열릴 동경올림픽과 관련하여 일본의 뻔뻔스런 조치 때문에 여러 국가에서 관심이 증폭되는 중이다. 아베는 2020년 올림픽을 통해 후쿠시마 원전 사고 이후 일본이 안전하다고 보여주려 한다. 그래서 아베가 직접 후쿠시마에 가서 물 한 모금 마시는 쇼도 하고 물고기도 한입 베는 표정도 보여주고 있다. 2020년 올림픽에는 후쿠시마에서 올림픽 성화가 출발하고 후쿠시마 가까운 곳에서 야구와 소프트볼 경기를 하며 후쿠시마산 농축수산물까지 전 세계 선수들에게 제공할 계획이란다.

하지만 최근 후쿠시마 공동진료소 의사 요시히코 스기이는 일본의 0~18세 인구의 연 평균 갑상선 암 발병률이 100만 명 중 3~4명인데 후쿠시마에서는 지난 6~7년 동안 35만명 가운데 200명대에 이른다고 밝혔다. 특히 후쿠시마 원전의 피폭지에 가까운 곳에서 갑상선 암 발병률이 훨씬 높다고 한다. 그런데 일본정부와 의사협회가 자꾸 검사하고 들쑤시면 사람들이 불안해하니 그만 두라고 했다고 전한다. 실제로 후쿠시마 지역이 얼마나 안전한지 후쿠시마산 농축수산물이 얼마나 먹을 만한 것인지 정확하고 객관적으로 진단하고 공개할 책임이 일본정부에 있는데 그걸 안하는 것이다.

그 대신 아베는 후쿠시마 지역이나 다른 지역으로 검은 피라미드를 쌓아 올리고 있다. 후쿠시마에서 방사능에 오염된 농토를 5㎝가량의 두께로 긁어내 비닐봉투에 담아 쌓는다는 것이다. 농토 표토 5㎝정도를 걷어 내 이를 검은 색 비닐에 담아서 방사능 위험을 줄인다는 발상이 일본정부의 작품이다. 나아가 일본정부는 이제 곧 방사능 오염수 100만톤을 앞바다로 방류할 계획을 세워 전 세계적인 공분을 자아내고 있다. 자기네들만 살겠다고 전 세계가 어떻게 되던 알 바 없다는 발상이다. 세계에서 양심적이고 평화 애호적이며 국제법도 잘 지키는 국가라면 과연 이렇게 할 수 있는 것일까?